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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2) 김경주 편

시인답게 2007. 8. 5. 22:57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2) 김경주편


'걱정스러울 만큼 뛰어난 신예 수백 년 된 화석에서 어미의 울음 듣다'

최근 2년간 한국 시단엔 벼락과 같은 축복이 내려졌다. 황병승과 김경주. 이 둘의 등장은, 21세기 한국시의 진정한 스타트 라인으로 기록될 법한 일종의 사건이다. 이 둘의 존재는 21세기 한국시가 개척한 신 영토를 고스란히 가리킨다.

2005년이 황병승의 해였다면 2006년은 김경주의 해였다. 황병승이 21세기 들머리 소위 ‘미래파’ 논쟁을 촉발했다면, 김경주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요즘 젊은 시의 영역을 한 뼘 더(혹은 더 그 이상) 넓혔다는 평을 듣는다. 황병승(1970년생)은 지난해 미당문학상 최종심에서 최연소 후보였고, 76년생 김경주는 올해 미당문학상 후보 가운데 최연소를 차지했다. 미당문학상이 팔팔 끓는 한국 시의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이 두 시인은 몸소 증명한다.

앞서 인용한 ‘주저흔’은 시인이 고른 추천작이다. “다소 어렵더라도 ‘주저흔’을 실어달라”고 시인은 말했다. 작품은, 김경주 특유의 서정과 시학 나아가 김경주의 특징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울음소리는 다르다고 믿는다. 이미 그는 ‘멸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종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 5’부분)라고 첫 시집에서 쓴 적 있다. 이번에 시인은 그 울음소리의 기원을 추적한다. 수백 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 시인은 추적의 결과를 타이핑한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울음소리와 바람소리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고, 그 위에 주저흔(Hesitation marks, 자살하기 직전 머뭇거린 흔적)’의 이미지가 다시 포개진다. 똑 떨어지게 설명할 순 없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지만 결국 시인이 귀속되는 건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어미다. 문법을 어기고 맞춤법을 무시하는 시적 전략이 드러나지만 시를 지배하는 정서는 삶을 향한 어떠한 절실함이다. 깊은 사색의 흔적이 느껴지면서도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와 같은 표현은 입안을 달콤하게 감돈다. 이광호 예심위원이 “요즘 젊은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음역이 넓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마디로 정리해서 김경주는,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시인이다.

김경주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이란 찬사를 들으며 문단에 나타났다.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비평가 권혁웅)란 화려한 표사를 달고 나왔다.

그리고 1년 뒤, 김경주의 첫 시집은 이례적으로 1만 부가 넘게 팔렸다. ‘시집 1만 부 판매’보다 훨씬 이례적인 기록인 ‘시집 10쇄 인쇄’도 연내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다. 21세기 벽두, 김경주는 존재만으로 하나의 사건인 시인이다.


출처 : 트레킹이 읽는세상
글쓴이 : 트레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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