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는 인간 내면의 의식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음악으로 표출하려 무던히 애썼고, 그 결과 완성도 높은 완벽한 사운드의 앨범과 환상적인 스테이지 구성을 통해 끊임없이 충격을 던져왔다. 그들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벽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역설한 저항 그룹이었다. 이렇듯 79년 12월 통산 열두 번째로 발표된 더블앨범 <벽>(The wall)은 플로이드 음악의 정점이며 의식의 완결 편이었다.
핑크 플로이드는 <달의 어두운 저편>에서 현대사회의 밝은 쪽보다 어두운 면을 바라보았다면 <벽>에서는 그 어두움의 근원을 발견했다. 그 벽은 획일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요 폭력의 가장 극악한 형태인 전쟁이었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자유의사를 차단하는 현대사회의 소외와 잔인성이었다. 결국 플로이드는 벽이라는 단절과 폐쇄의 상징으로 현대사회에 내재되어있는 모든 억압적 요소에 대한 거부를 한편의 사회 드라마로 엮어낸 것이었다.
이 억압요소 가운데 가장 큰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획일성을 조장하고 강제하는 교육제도였다. 그것을 담고 있는 곡이 싱글로 발표되어 스매시 히트된 ‘벽 속의 또 다른 벽돌 2부’(Another brick in the wall.Part2)였다. 이 곡은 발매 5일만에 34만장이 팔렸고 80년 신년 벽두에 빌보드 1위를 차지한 뒤 4주간이나 정상을 지켰다. 미국 음악 저작권협회(ASCAP) 선정 1980년 말 팝 올 차트에서도 앨범 부분과 함께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마도 대중음악사상 교육을 소재로 다룬 최초의 곡일 이 싱글은 그러나 ‘우린 교육이 필요치 않아요.. 선생님, 우릴 제발 내버려 둬요!’라고 절규하는 어린이들의 코러스 부분 때문에 일부 매스컴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에서는 방송 및 음반발매 금지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우리나라에서도 전면 금지되어 90년이 돼서야 햇빛을 보았다). 그러나 구미 각국에서는 이 곡의 인기에 힙 입어 앨범 <벽>이 2개월만에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80년이 끝날 무렵엔 1000만 장을 돌파하는 위력을 과시했다.
교육제도를 비판한 또 하나의 노래 ‘우리 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에 따르면 가장 즐거웠던 때는 학교에 가 선생님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전이다. 또 폭력으로 얼룩진 현대의 초상은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았는가. 폭탄이 투하되는 소릴 들었는가. 화염은 사라져도 고통은 남아 스멀거리지’라는 내용의 ‘푸른 하늘이여 안녕’(Goodbye blue sky)에 그려지고 있다.
앨범 <벽>은 82년 ‘엔젤 하트’, ‘버디’, ‘미시시피 버닝’ 등의 명장 알란 파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됨으로써 또다시 주목을 끌었다.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아니라 영화의 이미지 트랙으로서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현란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충격’을 선사하는 영화 ‘벽’은 뛰어난 영상과 함께 핑크 플로이드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해주면서 여전히 영화와 음악 마니아들이 즐겨찾는 레퍼토리로 남아있다. 이 영화는 비디오로 팬들간에 유통되어오다가 99년에는 정식으로 극장 상영되었다.
<벽>은 그러나 플로이드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룹의 리더인 로저 워터스의 독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멤버 데이비드 길모어, 릭 라이트, 닉 메이슨의 의견은 거의 배려치 않았고 독단적으로 작업을 진행했으며 작사, 작곡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서 전횡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는 <벽>을 자신의 자서전 격으로 전락(?)시키는 가운데에서도 한편의 ‘드라마’로 연출해내는 역사적 과업을 성공리에 수행했다. 따라서 ‘벽 속의 또다른 벽들Ⅱ’를 비롯해 ‘푸른 하늘이여 안녕’, ‘산 몸으로’(In The Flesh), ‘어머니’(Mother), ‘편안히 마비된’(Comfortably numb), 그리고 라이브에서 더 진가가 발휘된 ‘런 라이크 헬’(Run like hell) 등 좋은 곡들이 눈에 띄지만 개별곡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수록곡들을 파악해야 한다.
최고히트에 최대판매 앨범이라는 영광 뒤에는 해산의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그늘’이 그들을 뒤덮었다. 결국 로저와 데이비드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그 와중에 릭 라이트가 탈퇴, 3인조로 낸 <마지막 장면>(The Final Cut, 83년)을 마지막으로 그룹은 와해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로저가 그룹을 뛰쳐나왔고 릭 라이트가 다시 들어와 ‘로저 없는 핑크 플로이드’로 재탄생된다.
<벽> 이후의 진행상황은 실망스럽지만 흔들리기 직전 그들은 록 역사에 길이 남을 ‘음반 드라마’를 내놓음으로써 팬들의 용서를 구할 수 있게 됐다. 이 앨범은 팝 역사에 획을 그은 것이 사실이요 록 분야에 남긴 위대한 유산임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곡 구성 등에서 보여지는 다소간의 취약성 때문에 명반이나 걸작으로 분류하는 데 어려움이 없진 않다.
프로그래시브 록의 전설 Pink Floyd가 그들의 최고 명반으로 평가 받는`The Wall`앨범 발표 후 가진 라이브 월드 투어 공연 20주년을 기념하여,그동안 비주얼을 통해서만 소개되던 화제의 공연실황을 담은 라이브앨범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감성이 실려 있다. 그들은 늘 인간과 사회가 지니는 근원적인 문제와 공통의 관심사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실험을 위한 실험으로 그치지 않는 탁월한 스튜디오 작업으로 전에 없던 큰 스케일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밴드의 모든 앨범들은 뚜렷이 드러나는 컨셉트 하에 상이한 방법론과 형식, 각기 다른 실험적 시도를 포함한다. 때문에 멤버들 개개인이 고유한 스타일과 연주 패턴을 지니고 있음에도 각각의 작품들은 새로운 향기를 간직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핑크 플로이드의 사운드는 특정한 분위기와 스타일에 의한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