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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임영조론(신광철)

시인답게 2012. 10. 5. 23:43

 

 

 

  귀로 웃는 시인, 임영조 시인

 

  신 광 철

 

  1943년 10월 19일 밤

  하나의 물음표(?)로 시작된

  나의 인생은

  몇 개의 느낌표(!)와

  몇 개의 말줄임표(……)와 

  몇 개의 묶음표(< >)와

  찍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둔

  몇 개의 쉼표(, )와

  아직도 제자리를 못 찾아 보류된

  하나의 종지부(. )로 요약된다

  ㅡ임영조, <자서전> 일부

 

  귀로 웃는다는 말씀 들어보셨지요. 미당 서정주 시인이 지어준 임영조 시인의 호가 이소(耳笑)입니다. 이소라는 호의 의미에 다시 한 번 웃음을 웃습니다. 크게 웃음을 웃을 때 귀까지 걸리는 파안대소가 이소인지 아니면 소리 없이 조용히 웃는 웃음을 이소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생에서 웃음은 꽃이지요. 얼굴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웃음입니다. 웃음이 전해주는 세상은 다시 웃음이거든요. 인생 전체를 걸어 꽃 한 송이 피우는 일에 몰두하는 한해살이풀처럼 인생에서 웃음은 꽃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웃음을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자는 말입니다. 어디를 갈 때 꼭 끌어안고 가거나 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애완동물이 반갑습니다. 애완동물을 분신처럼 끌어안고 살듯이 웃음도 늘 가지고 살자는 게지요. 하지만 세상이 가만 놔두지를 않습니다.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하여 견뎌야 할 것도 많습니다. 태풍이 부러진 나무를 보곤 합니다. 가뭄에 말라가는 나무를 보기도 합니다. 견뎌야 할 것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견뎌야만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파란 하늘을 불어가는 바람이 부드럽고, 함께 꽃 피우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꿈속에서 꿈꾸듯 환상을 안고 살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임영조 시인의 「자서전」이라는 시는 참 의외면서 재미있습니다. 문장부호로 인생 전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임영조 시인의 탄생일이 ‘1943년 10월 19일 밤’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서전이라는 제목처럼 자신의 인생을 대입시켰습니다. 세상살이에는 어둡고 꿈꾸며 사는 사람이 시인인데 시에는 소설과 달리 진정성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묘합니다. 시에는 사실적이고 직접적 문장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성적이고 은유와 환치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시에서 진정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시가 가진 진실함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인생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기간을 말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세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세상에 자신의 역할을 창조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위하여 봉사하지도 않고 내가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여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인 관계의 망에 의하여 세상과 주고받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파격이고 사건입니다. 내가 걸어간 길만이 진정한 내 길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만이 진정한 내 인생입니다. 나는 세상에 탑을 쌓을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미워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통제할 수 있는 힘이나 능력을 말합니다. 죄의 문제도 선행의 문제도 난해해지기 시작합니다. 인간이 자유 의지를 얼마나 가지는가에 따라 운명과 사람의 독립이 가능한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신과 사람은 대립적인지 독립적인지도 논의해봐야 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됩니다.

 

  자서전은 자신이 직접 쓴 자신의 인생을 적은 글입니다. 사실 객관을 마음 안에 들이는 일이 어렵습니다. 하여 주관을 각오하고 써야하는 것이 자서전입니다.

 

  1943년 10월 19일 밤 

 

  자서전을 창작한 임영조 시인의 태어난 시간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임영조 시인의 본명은 세순(世淳)이며 실제로 1943년 10월 19일생으로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습니다. 탄생이 이 세상에 빈틈 하나 마련해서 정착하는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란 이름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있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저지요. 저는 임영조 시인이 태어난 이유는 시인이 되기 위하여라는 전제 아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시인이란 이름에 고이는 슬픔과 아픔 그리고 웃음과 성찰이 고스란히 시가 되지는 않지만 바람에 향기 날리듯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시로 만들어져 시리고 벅찬 사람들의 마음의 안뜰에 내려앉았습니다. 나비가 된 게지요. 팔랑거리며 마음의 산책로에 꽃처럼 피어 때론 웃음을, 때론 각성을 길어 올리기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시인에게는 이상하게도 부자나 권력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시인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문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작가, 소설가, 수필가, 음악가, 도예가처럼 대부분 집가家자가 붙는데 시인에게는 사람인人자가 붙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시인에게 사람 인자가 붙은 것은 가난하고 나약하지만 만족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생각하는 독립된 존재로서의 개인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1943년 10월 19일 밤

  하나의 물음표(?)로 시작된

  나의 인생은

  몇 개의 느낌표(!)와

  몇 개의 말줄임표(……)와 

  몇 개의 묶음표(< >)와

  찍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둔

  몇 개의 쉼표(, )와

  아직도 제자리를 못 찾아 보류된

  하나의 종지부(. )로 요약된다

 

  시 전문을 읽는데 어떤 어려움도 없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배운 상식이라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시입니다. 쉽게 쓰려는 의도가 곳곳에 보입니다. 진정성 확보를 위하여 시인의 생일을 첫 부분에 적고 인생 전체를 문장 부호로 압축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몇 개의 문장부호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시는 한 사람의 인생이 대단하지 않게 보이게 할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음미해보면 그 안에는 숨겨진 비밀스런 생명의 신비도 있고 역경과 고난의 극복도 있습니다. 느낌표 안에 숨겨진 감동과 충격의 어느 날이 담겨 있으며, 줄임표에는 말 못할 비밀 하나가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종국에는 <하나의 종지부(. )로 요약된다>고 했습니다. 저녁 어스름에 되돌아보면 아침부터 달려온 하루해가 길게 느껴지기도 한 날이 많은 것이 생인데 간결하게 생을 정리했습니다. 오히려 너무 간단하고 명료해서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쉽게 쓰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쉬우면서 감동을 주는 시가 가장 어려운 시입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아하!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글을 쓰기란 어렵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전체를 꿰뚫는 통찰과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쉽게 쓰기 위해서는 전체를 통합하는 통찰력과 심안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전문용어나 인용을 하는 것은 한 단계 아래입니다.

 

  성자들의 말이 어려워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나 부처, 그리고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의 언어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동과 각성을 줍니다. 이를 해석하는 종교학자들의 글을 읽어보십시오. 얼마나 어렵고 이해하기 혼란스러운가.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시는 쉬우면서 깊습니다. 옹달샘에 솟는 물이 표피를 흐르지만 차갑고 맑습니다. 근원이 깊기 때문입니다.

 

  임영조의 시는 깊습니다. 사람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가에 평생 관심을 가진 시인이어서 그렇습니다. 성찰과 각성 그리고 진실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영조 시인의 시는 서정이 살아있으면서도 발 담그기 어려운 해학이 진정성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가볍고 발랄하게 직조 되어 있지만 마음을 울리는 서늘함이 폐부를 찌릅니다. 시에서 경쾌한 발걸음이 느껴지는 것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언어의 발걸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임영조 시인의 지속적인 관심사는 자아의 성찰과 존재의 탐색에 있습니다. 철학적인 시와 자기성찰적인 시가 드문 상황에서 임영조 시인의 시는 귀한 시입니다.

 

  "놀라운 청승과 집중력으로 세상을 헤쳐 오며 채집해놓은 한 마디 한 마디의 정곡이 마침내 달성해내는 이 독특한 시적 율법과 미학은 그의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김명인 시인)

 

 

  "날카로운 비유, 기발한 착상과 연상작용, 놀라운 투시력 등은 그의 시의 독특한 기법이다." (이건청 시인)

 

  "문득 잠재된 채로 꿈틀거리고 있는 정갈한 맛의 서정성과 더불어 강한 의식을 일깨워주는 듯한 냉철하고 서늘한 해학성으로 인한 진정성이 가득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구재기 시인)

 

  "섬세하고 진솔하고 포근하다. 조용히 관조하고 골똘히 음미하고 열린 마음으로 체감하는 것이 그의 방법이다. 그의 시는 지혜와 원숙을 지향한다." (유종호)

 

  면접시험을 보면 면접관들의 평가가 거의 일치한다고 합니다. 10명의 면접관이 면접을 보면 9명 면접관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다른 한 명도 관점의 차이에 의하여 어긋났을 뿐 평가는 같았다고 합니다. 임영조 시인에 대한 평가 또한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합니다. 진정성과 기법의 발랄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임영조 시인의 직접적인 발언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때때로 젊은 시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런 지적들을 받곤 합니다. 당신의 시는 시대착오적이지 않느냐, 광주며 민주화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이 보이지 않는 시가 무슨 의미를 갖느냐는 거지요. 역사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양심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시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독법이 아니겠느냐고 혼자 생각하곤 해요. 시란(예술이란) 그 자체로서 생명력이 있는 독립체가 아니겠어요. 그것이 인간의 삶의 방향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건 부수적인 문제이지, 인간의 정서의 반응물이라는 원초적인 속성을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점입니다. 나는 참된 시란 시대적 정황과 분리시켜 만날 때에도 심오한 감동을 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은 저마다 다릅니다. 또한 달라야 합니다. 다 같이 소리치고 다 같이 침묵하는 것이 다는 아닙니다. 세상에 휘몰아치는 선동과 격변이 있어도 면벽하고 있는 선승이 있고, 수도원에서 기도만으로 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삶도 아름답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빛납니다. 오히려 같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벼워 보입니다. 전쟁 중에도 꽃은 피우는 식물이 있고, 평화로운 와중에도 끓어오르는 활화산 같은 웅변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의 시가 모두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면 시인이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위대한 철학도 다른 철학 위에 올라서서는 안 됩니다.

 

  철학은 철학 스스로의 무게로 존재하며 비교의 우위가 아니라 독립된 정신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면 됩니다. 사상과 철학을 받아들이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철학은 개인의 삶처럼 독립적일 때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철학과 사상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선택할 수는 있지만 어느 것이 더 정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독재에 항거하는 시도 아름답지만 서정을 노래하는 시도 아름답습니다. 자연을 노래하는 시도 아름답지만 존재의 근원을 노래하는 시도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저마다의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게가 다른 것이 아니라 소리와 향기가 다를 뿐입니다. 다 같이 어울리고 화합하여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존재의 무게는 같지만 보여지는 빛깔이 다를 뿐입니다. 존재가 실존을 확인받기 위해서는 장소와 시간을 배정받아야 가능합니다. 이 두 개의 요소가 실존의 필수요소지요. 임영조 시인은 실존하는 것에 대한 본질파악과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면벽 100일!

  이제 알겠다, 내가 벽임을

  들어올 문 없으니

  나갈 문도 없는 벽

  기대지 마라!

  누구나 돌아서면 등이 벽이니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속 집도 절도 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

  

  간 사람이 없으니

  올 사람도 없는 섬

  뜬구름 밀고 가는 바람이

  혹시나 제 이름 부를까 싶어

  가슴 늘 두근대는 절해고도여!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가서 동서남북 십리허에 

  해골 표지 그려진 금표비(禁標碑) 꽂고

  한 십 년 나를 씻어 말리고 싶다

 

  옷 벗고 마음 벗고

  다시 한 십 년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等神)

  눈으로 말하고

  귀로 웃는 달마가 될까?

 

  그 뒤 어느 해일 높은 밤

  슬쩍 체위 바꾸듯 그 섬 내쫓고

  내가 대신 엎드려 용서를 빌고 나면

 

   나도 세상과 먼 절벽 섬 될까?

  한 평생 모로 서서

  웃음 참 묘하게 짓는 마애불 같은.

 

  ㅡ임영조, <고도를 위하여> 전문

 

  시가 통렬하고 화끈하지 않은가요?  "이제 알겠다, 내가 벽임을/ 들어올 문 없으니/ 나갈 문도 없는 벽/ 기대지 마라!/ 누구나 돌아서면 등이 벽이니"

  자신의 등을 벽이라고 정의내리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데 자신의 등이 절벽이니 기대지 말라고 합니다. 인생에 대해 정면도전이라도 할 듯한 태세입니다. 사방을 막고 세상과 통하는 문을 닫아걸고 자신을 찾으려는 절박한 목소리를 듣는 듯합니다.

  "마음속 집도 절도 버리고, 한 십 년 나를 씻어 말리고 싶다"고 합니다.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본성으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본성을 깨닫고 싶은 간절함 때문입니다. 나를 모르면서 다른 것을 알면 무엇 합니까. 내가 태어난 이유를 모르면서 세상을 살면 제대로 산 삶이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산 것인지 모르면서 살면 살아 무엇합니까.

 

  자신에 대해 가혹하게 묻고 따지고 관찰하는 독립적인 영혼의 소유자, 임영조 시인의 시는 독특합니다. 성찰의 시여서가 아니라 성찰의 방법과 시어의 독특한 전개가 그렇습니다. 시어를 꾸미지도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언어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서 동서남북 십리허에/ 해골 표지 그려진 금표비(禁標碑) 꽂고" 같은 부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자서전」이란 시에서도 어느 한 부분 미화시키지 않은 일상적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의 진정성과 투박한 임영조 시인의 진실성을 발견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참된 시란 시대적 정황과 분리시켜 만날 때에도 심오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임영조 시인의 시는 꾸밈없고 질박한 뚝배기 같지만 뚝배기의 질감처럼 질리지 않는 깊은 멋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가난에 고등학교 등록금조차 내지 못하고 결국 새끼 밴 염소를 식구들 몰래 허겁지겁 헐값에 팔아버린 적이 있는 것을 고백하는 시인. 안 끌려가려고 버티는 염소를 추억하며 아파하는 임영조 시인의 발언을 놓고 가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삶은 전국적으로 맑아도 곳에 따라서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변화가 많은 날씨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늘 내 시가 굳이 어떤 혁명을 주도하거나 우리네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명쾌한 철학이나 사상이 내포되길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눈으로 읽어 낸 일상의 매듭이나 흔히 접해온 사물이 나의 치열한 언어미학을 통해 시 속에서 어떤 빛을 발하는지 거듭거듭 실험해 보고자 한다. 독자에게는 쉽고도 어려운 시, 요컨대 쉽게 읽히면서 그 속에 숨겨진 내면세계는 높은 경지에 이르러 아무나 흉내 내기 어려운 시, 읽을수록 감칠맛 나는 그런 시가 최상의 시라고 믿어온 때문이다."

 

   ㅡ<월간 한비문학>에서

 

 

출처 : 이승하
글쓴이 : 이승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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