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시어와 새로운 시어의 차이
대상 작품
봄은 비를 타고서
1* 오고 있다
2* 봄이 비를 타고서
3* 가녀리나 힘찬 빗방울로
4* 아파트 담 옆에 무심코 서있는
5* 라일락 뿌리를 잘게 두드리며
6* 멈추어 무뎌진 내 이마를
7* 부드럽고 날렵한 손으로
8* 쓰다듬으며 풍성히 적시고 있다
9* 잠에서 깬 나는 수천의 나비가 되어
10*공중에 푸르게 날아올라 날개에 묻은
11*어제의 습기를 햇빛에 털어 말린다
1* 신문배달 소년의 무거운 팔 위
2* 때 늦은 경비 아저씨의 피곤한 새벽잠 곁에
3* 봄은 잃었던 판도라의 상자 하나씩 몰래 놓아두고
4* 멀리서부터 조여매고 왔던
5* 운동화 끈을 풀어놓고 비를 따라간다
6* 마음껏 춤추며 놀다가
7* 새롭게 깃을 갖추는 나에게 손 흔들며
8* 봄이 가고 있다
9* 비를 타고서
평설
이 시는 ‘봄비’를 통해, 새로운 각오로 충만되어 있는 작자 자신의 부푼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문장들은 나무랄 데 없이 씌어져 있지만, 그것들이 서로 어떤 고리로써 연결되어 있는지, 작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가 잘 표출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1연의 9·10·11행과 2연의 4·5·6·7행은 서로 연관된 이미지를 지니면서, 이 시의 중심 내용으로 떠오르고 있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흔히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한 마음을 ‘수천의 나비’ ‘날개’ ‘햇빛’ ‘조여맸던 끈을 풀다’ ‘새로운 깃’ 등의 시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시어들은 작자가 임의로 선택한 것이지만 해당 언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로써 씌어진 것이 아니라 작자가 의도하고 있는 또다른 의미로 읽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언어의 은유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어들이 너무 평이하고 낡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독자들은 그러한 표현들에 이미 식상하다. 새롭고 참신한 시어들을 찾아내는 데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어라는 것은 조어(造語)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언어에 또다른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그 의미가 신선할 때에 독자들은 감동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시의 중심이랄 수 있는 1연의 9~11행이다. 현재 봄비가 힘찬 빗방울로 내리고 있는데 나비를 등장시키는 것은 억지일 수밖에 없다. 또 어제의 습기를 햇빛에 말린다는 것도 논리상 맞지 않는다. 이렇듯 문맥이 통하지 않으면 독자는 더이상 시를 읽어나가지 않는다.
군더더기를 더 지적해 보자. 1연의 4행은 앞뒤 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시는 압축과 긴장의 묘미이다. 4행은 오히려 긴장을 흐트려 놓고 있다. 6행의 ‘멈추어’는 무슨 뜻인지 불분명하게 씌어졌다. 9행의 ‘잠에서 깬’ 역시 군더더기이다. 그것이 단순히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각성을 뜻한다면 앞뒤에서 받쳐줄 수 있는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이다.
2연에서 1·2·3행은 이야기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고 할 수 있다. 1연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2연에서 갑자기 신문배달 소년과 경비 아저씨가 등장한 것은 시의 주제를 비껴나간 것이다. 작자가 자신의 주제를 더이상 끌어나갈 힘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좀더 치열하게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3행의 판도라의 상자가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없다. 혼자만이 알고 있는 암호와 같은 문장은 독자를 위해 해독해 놓아야 전체 문맥이 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2연의 8·9행에 해당하는 시의 마무리 부분을 보자. 너무 쉽게 처리하여 앞의 내용들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도입부에서 봄이 오고 있다고 했다가 봄이 가고 있다로 끝을 맺게 되면 봄이라는 한 계절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시간대의 폭이 너무 크고 지속적이어서 변화를 갖기가 어렵다. 시의 마무리는 전체적인 흐름이나 내용을 뒤바꾸어놓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부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정한 시를 읽어 보자. 첫행은 도치법으로 시작했는데, 그 효과가 별로 뛰어나지 못하여 다시 바꾸어 놓았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연을 새로이 갈랐다. 제목이 너무 평이하므로 다른 것으로 붙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쫈 수정
우화(羽化)
봄이
비를 타고 오고 있다
가녀리나 힘찬 빗방울로
무디어진 내 이마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손으로
나의 오랜 잠을 깨워 놓는다
라일락 뿌리,
목련의 푸른 줄기를 두드리는
비를 따라
한겨울 내내 조여매었던
내 마음의 고치실을 풀어낸다
봄 햇살이 반짝이고
나는 새롭게 깃을 갖춘다
공중에 푸르게 날아올라
날개에 묻은 습기를 털어낸다
수천 수만의 날개들이
봄의 빛깔로 물들어
햇살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다.
주 : 위 글 '포엠월드'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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