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구성하면서 참고할 수 있고 잘된 부분들을 예시하는 글입니다.
방법론적이기보단 조금 어려운 부분인 듯 합니다.
참고하세요.
구성 -내러티브 구축하기
1. 구성이란 무엇인가.
시한부 병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라면, 그가 시한부 병에 걸린 것을 주인공이나 관객에게 미리 알려주고 시작하느냐, 후반에 가서야 비로소 알려주느냐, 아니면 주인공만 모르고 관객에게만 미리 알려주었다가 나중에 모두 알게 하느냐, 그것도 아니면 주인공 관객 모두 모르게 한 다음 나중에 가서야 같이 알게 하느냐에 따라 각각에 대한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에 대한 결정은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노리느냐에 따라 달리 할 수 있는 문제이다.
2. 직선적인 내레티브 구성
구성을 얼마나 잘 하느냐느 주어진 스토리의 에피소드를 어떻게 극적으로 잘 배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관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치밀하게 잘 짜여진 시나리오란 어떤 곳인가에 대해 공부하려면 스필버그와 히치콕의 영화를 분석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프랑수와 뜨뤼포는 '최소한의 요소로부터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다'라는 시나리오의 구성원리는 히치콕의 <오명>(Notorious)이란 작품을 두고한 얘기라고 언급한 바 있지만, 내 생각엔 히치콕의 모든 영화가 그런 구성 원리를 보여 준다고 본다. 즉 히치콕은 복잡한 구성이 아니라 간결한 상황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가 최대한의 효과르 내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정통 드라마투루기의 역사는 대개 고대 서양의 희곡이나 문학에서 보이는 발단,전개,결말이라는 형태에서 시작된다. 물론 우리 동양의 한시에도 기승전결(起承轉結)같은 기본구성 원칙이 있었다. 그런 구성방식은 어떤 법칙이 먼저 존재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일정한 스토리에서 예술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원리였을 것이다. 연극에선 세익스피어의 희곡이 그런 구성 원리의 모범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① 발단-전개-결말
② 기-승-전-결
③ 도입-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특히 위기, 절정, 결말 부분에서 소홀하거나 그 감정의 강도가 약해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위기 지점에서 제대로 위기를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구성인 것이다. 시나리오가 좋은가 나쁜가는 사람에 따라서 도입부가 재미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나는 후반부 즉, 위기, 절정, 결말 단계가 얼마나 잘 돼 치밀하게 구성되지 않고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a. 도입 - 프롤로그
코미디일지, 멜로일지에 대한 장르 예측을 도입 단계에서 확실히 해 줘야만 관객들이 혼란감을 느끼지 않는다. 코미디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나중에 멜로나 스릴러가 되어 버리는 식으로 된다면 일관성이 없어 감정적인 리듬이 깨져 버릴 것이
경험상 도입부가 재미없으면 전체적인 내용도 뻔하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전체적인 이야기를 잡아 놓고도 막상 시나리오로 쓰고자할 때 첫 신을 어떻게 써내려 갈까로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성취한 영화 중 하나인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129분>를 보자.
작품의 도입부는 맥머피가 등장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정신병원에 처음 수용되어 환자들과 환자들과 인사하고 앞으로 그와 팽팽하게 대립하게 될 인물인 수간호사 라치엣, 그리고 원장 스피비 박사와도 대면하는 상황이 보여진다.
b. 발단-갈등의 시작
말 그대로 사건의 발단이 되는 지점이다.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관객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앞으로의 장면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긴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조차 영화 속에서 보여질 구체적인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면 아마 관객들은 '이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하면서 짜증낼 것이다.
특별한 예술 영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갈등은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런 갈등은 영화 중반부 이전에 시작되는게 상례이다. 너무 늘어지면 지루해지기 쉬우니까. 상업 영화에선 극적 갈등을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재미없는 영화들은 확실히 갈등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영화들이 애초부터 갈등을 안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들은 의도했지만 그런 갈등이 객관적으로 그다지 갈등답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일 것이다.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의 발단은 환자들과 디스커션 요법에 참석했다가 그들이 정신병원에 오게 된 배경을 알게 된 맥머피가 점차 규칙이라는 미명하에 환자들을 병원 일정에 맞추고 강압적으로 통제하려는 병원 수간호사와 대립하게 되는 설정이다. 맥머피는 다른 환자들이 수간호사에게 고분고분 순응하는 것과는 달리 음악이 시끄러우니 줄여 줄 수 없냐는 식으로 점차 반항하고 대립하게 된다. 여기서 관객들은 앞으로 맥머피와 수간호사 라치엣과의 대결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다음 상황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이안의 <결혼 피로연>에서의 주요한 갈등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들을 결혼시키기 위해 대만에서 온 부모(특히 아버지)와 미국 남성과 동성애중인 젊은 아들 위동 사이에서 일어난다. 즉 동성애 동성애자인 위동이 고전적인 결혼을 바라는 아버지와 어떻게 타협을 이룰 것인가가 그 작품의 주요 갈등이 된다. 그 갈등의 시작은 발단 부분에서 위동의 아버지가 갑자기 미국으로 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c. 전개
전개는 발단에서 드러난 극적 갈등이 구체화되고 심화되는 지점으로 여러 단계 중 가장 많은 분량이 소요된다. 여기서 여러 가지 극적인 과정을 겪다가 위기로 다가간다. 그러기에 이 지점에선 위기를 진정 위기로 느낄만한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풍부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야 똑같은 상황을 전달할지라도 훨씬 극적일 것이다. 나중에 절정 지점에서 일어날 극적 반전이나 인상적인 결말을 위한 복선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전개 부분에선 맥머피가 환자들에게 활기와 자신감 및 자유 의지를 은연중에 심어 주기 위해 그들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수간호사와 자주 대립하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보여지는 주요 에피소드는 맥머피가 디스커션 요법 시간에 월드 시리즈 야구 중계 방송을 보자고 제안했다가 실패하고서 수간호사와 다툼을 벌이는 상황, 환자들을 태운 정신병원 수용 버스를 탈취해 창녀들과 함께 낚시 여행을 떠나는 설정 등이다. 이들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맥머피가 어떻게 환자들을 변화시키나를 아주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수도관 몸체 들어올리기 게임은 라스트 신에서 인디언 치프가 병원을 탈출하는 방식에 대한 복선을 제공한다.
영국 영화<폴 몬티>(1997)의 경우, 적은 예산으로 어떻게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점에서 자본이 영세한 우리 한국 영화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 작품이 아주 새로운 형식을 가진 건 아니다. 단지 컨셉이나 상황 설정이 재미있을 뿐 작품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하기엔 내레티브가 너무 단순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영화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할리우드적인 구성의 모범을 보여준다.
도입 단계에선 철강으로 번창했던 셰필드란 도시에 불황이 닥쳐 철강 회사가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자 문을 닫은 철강 회사에서 한때 그 회사 노동자였다가 이젠 직장을 잃은 실업자 가즈와 친구 데이브가 몰래 철근을 빼돌리려다 실패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들은 우연히 남성 스트리퍼들이 춤을 추는 한 술집이 여자들에게 크게 인기 있는 걸 보게 된다.
사건의 발단은 결국 직장을 구하는 데 실패한 가즈와 데이브는 그 자신들도 남성 스트리퍼가 되어 돈을 벌어 볼 생각을 하며 거기에 참여할 단원들을 하나씩 모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들 대부분이 사연이 많은 실업자들이다. 가즈 자신은 아들이 하나 있지만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 이혼한 아내에게 양육권을 뺏길 처지에 있다. 뚱보 친구 데이브는 직장을 잃은 후 아내와의 잠자리에 문제가 있다. 롬퍼는 자살을 시도하다 데이브의 도움으로 살아나 같이 어울린다. 제랄드는 아내를 속이고 6개월째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속이며 일자리를 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제랄드를 끌어드이는 가즈는 오디션을 거쳐 흑인을 포함 두 사람을 더 뽑아 정식으로 스트립 단원을 조직한다.
가즈와 데이브가 스트립 단원을 뽑기 위해 사람들을 하나하나 끌어 모으는 방식은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칠인의 사무라이>에서 칸베이라는 떠돌이 사무라이가 산적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농부들을 도울 정의의 사무라이를 하나씩 모집해 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가즈를 비롯한 남성 스트립 쇼단은 춤을 출 줄 아는 데이브의 도움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하는 데서 전개 부분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순조롭지 않다. 그들의 계획이 순조롭다면 영화는 재미없을 것이다. 당연히 어려움을 겪는다. 뚱보 데이브가 자신은 배가 나왔기 때문에 스트립쇼를 하면 웃음거리가 된다며 중도에 포기하고 백화점 경비원으로 취직을 해버린다. 거기에다가 가즈 일행은 텅 빈 철강 회사에서 몰래 스트립 리허설을 하다가 경비원에게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생긴다.
d. 위기-극적인 반전
그 동안 진행되어 오던 갈등이나 사건이 큰 변화를 겪는 단계가 바로 위기다. 대개 주인공들이 큰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 보여진다. 특히 이 지점에서 주인공이 위기를 겪을 때, 그 동안 동일화되어 온 관객도 똑 같은 심정으로 위기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극적 상황을 위해선 반전이 자주 활용된다.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에서는 주인공 렌턴이 마음 잡고 부동산 소개업을 하는데, 예전의 망나니 동료들이 찾아와 고민하는 시퀀스가 일종의 위기다. 렌턴은 그들을 배반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한다.
< 다이하드>에서는 맥클레인 형사와 테러범들이 대립해 싸우던 중 인질 중에 신분을 숨기고 있던 맥클레인의 아내가 테러범들에 의해 들켰을 때 위기가 발생한다. 테러범들은 즉각 아내를 인질로 맥클레인 형사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안의 <결혼 피로연>에서의 위기는 부모 때문에 동성 연애자인 위동이 중국 유학생 위위와 위장 결혼을 하였는데, 그녀가 임신을 했을 때 일어난다. 아버지는 아들이 위장 결혼한 줄도 모르고 대를 이을 자식을 가졌다고 좋아하고, 위동은 아이를 때려 하고... 결국 그런 위기는 위위가 아이를 낳고 위동은 사이먼과 동성 연애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절묘한 타협으로 해결된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위기는 그 동안 정신병원에서 일정 기간만 있으면 퇴원할 것으로 알고 있었던 맥머피가 간호부에 의해 자신은 특별 관리 대상이고 연장 구금되어 있는데다 어쩌면 영원히 그 병원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온다. 또한 맥머피는 그때서야 비로소 강제 구금되었을 거라고 예상했던 대부분의 환자들이 자진해서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고 자신처럼 강제 구금 대상인 인디언 치프에게 탈출을 제안한다. 그 동안 말도 없이 벙어리로만 여겼던 치프가 알고 보니 말을 할 줄 안다는 반전도 이 지점에 있다. 어쨌든 주인공 맥머피는 탈출이냐, 영원히 정신병원 신세냐의 기로에 선다. 그런 와중에 그는 디스커션 요법 시간에 소동을 일으키다 간호부들과 싸움이 붙어 그 벌로 전기 충격 요법까지 받게 됨으로써 감정적인 폭발 직전에 있게 된다. 그래서 탈출을 계획한 그는 밤에 몰래 병동 내로 창녀들을 불러들여 환자들과 함께 요란스런 파티를 즐긴 후 창문을 열고 도망가려다 술에 취해 잠이 들고 만다.
< 폴 몬티>에선 어떻게 위기가 닥칠까? 가즈 일행은 경찰에 입건된 후 무혐의로 바로 풀려나지만 주변의 웃음거리가 되어 그들의 남성 스트립쇼에 대한 꿈은 좌절될 위기에 처한다. 다들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지만 쉽지 않다. 제랄드는 마침내 빚쟁이들에 의해 집에 차압이 들어옴으로써 아내에게 모든 거짓말을 들키게 되고, 가즈는 아들을 아내에게 뺏긴다. 롬퍼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고... 하지만 할리우드 구성상 당연히 반전이 온다. 이전에 그들이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철강 스트리퍼'라는 식으로 신문 등에 남으로써 오히려 유명하게 되어 여자들이 그 스트립쇼를 보고 싶어하게 되자 술집 주인이 가즈에게 빨리 쇼를 올리자고 한다. 위기를 탈출하는 데 효과적인 극적 장치가 반전이다.
e. 절정-카타르시스의 지점
그 동안 쌓여 온 갈등들이 증폭되어 폭발하는 지점이 바로 절정이다. 작품에 따라 이 단계는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짧아도 너무 길어도 안 될 것이다.중요한 것은 절정이 강렬해야 하고,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확실하게 앞에서 보여진 위기를 극적으로 몰아가 극단으로 치닫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 택시 드라이버>에서 고독한 택시 운전사 트라비스가 사창굴에 들어가 포주와 민간 경비원을 처절한 총격전을 벌이며 싸죽이고 소녀 아이리스를 구하는 부분이야말로 영화에서 절정이 무언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장면이다. 스타일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파리 텍사스>에서도 주인공 트라비스가 핍쇼룸에서 거울을 사이에 두고 아내 제인과 재회하는 것도 뛰어난 절정의 한 장면이다.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절정의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다. 그 영화의 라스트는 갱들이 위장 경찰을 놓고 자기들끼리 다투다 서로가 서로를 릴레이식으로 동시에 총으로 쏘아 같이 죽는다. 갱들의 자기 파괴적인 심리를 풍자적으로 다룬 그 장면은 비록 홍콩 영화에서 응용한 장면이긴 하지만 홍콩 영화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잘 사용되었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는 맥머피가 병원 탈출 직전에 수간호사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그녀를 목졸라 죽이려는 게 이 작품의 절정이다. 그는 한밤중에 창녀들과 요란한 파티를 즐긴 후, 다음 날 아침 탈출하려다 환자중 말더듬이인 빌리 문제로 인해 탈출 직전에 수간호사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그녀의 목을 조르느라 탈출에 실패한다. 결국 영화 전반에서부터 계속 끌고 오던 맥머피와 수간호사의 팽팽한 대립 관계가 여기서 무너진다.
< 폴몬트>의 절정은 가즈가 다시 스트립 단원을 불러모아 쇼를 올리게 되는 부분이다. 술집은 그들의 쇼를 보고자 하는 여성 손님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남자 손님들까지 와 있을 정도가 된다. 마침내 참가를 거부하던 데이브도 아내의 성원에 힘입어 돌아오게 되어 분위기가 고조를 이룬다. 쇼를 하기 직전 주동자인 가즈가 남자 손님들 앞에선 못하겠다고 거부하지만 그건 라스트를 좀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마침내 스트립쇼가 시작되고 여성 관객들은 환호한다. 봅 호세의 뛰어난 뮤지컬 <재즈의 모든 것>(All that Jazz)에서 재즈 뮤지컬의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주인공 조 기디언(로이 샤이더)이 죽음 직전에 환상을 통해 마지막 무대는 뛰어나게 연출된다. 그것은 실제로 영화에서 절정이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정통 드라마트루기의 절정에선 심리적으로 일종의 카타르시스(정화) 효과가 있어야 한다. 가령 <편지>의 후반부에서 비디오를 통한 환유의 영상 편지는 일종의 절정인데, 그 장면에서는 철저히 눈물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의도하고 설정했다. 만약에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그 영화는 멜로 드라마로서 실패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절정에서의 그러한 카타르시스를 오히려 거부하고 거의 생략하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런 경우인데, 그 작품은 의도적으로 정통적인 드라마트루기에서 보여 주는 절정의 느낌을 주인공이 자신의 초상화 사진을 찍는 정도로 단순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스타일이다.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그런 비정상적인 절정을 싱겁게 생각하고 이게 뭐야 할 수 있지만 비평가 입장에서는 그런 초월성이 작품의 질을 높였다고 평가한다.
만약에 <8월의 크리스만스>에 <편지>처럼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위한 절정을 설정했다면 그 영화의 톤은 깨지고 실패작이 됐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편지>가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담담하게 결말이 지어졌다면 역시 실패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둘다 멜로 드라마이지만 하나는 드라마트루기가 중요되는 정통 드라마로서 이야기를 구축해 왔고, 다른 하나는 드라마보다는 분위기와 에피소드가 중요시되는 서정적인 멜로 드라마로서 끌어 왔기 때문에 그런 설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절정은 장르나 작품의 스타일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고다르 영화처럼 정통 드라마트루기를 거부한 영화들에서는 절정이 어디인가를 찾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f. 결말
이 지점에선 그 동안 맺혔던 갈등을 풀어 주고 서서히 마무리를 지어 주어야 한다. 절정에서 바로 마무리를 해주는 것보다 절정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을 그 동안 쌓아 온 복선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는게 좋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 동안 일어난 극적인 스토리 속에서 빠져 나갈 심리적인 여유를 주는게 좋다는 것이다. 때로는 일종의 반전에 의해 예기치 못한 결말을 주어 관객을 즐겁게 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역으로 작위적이나 억지 느낌을 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관객들을 위해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작위적이어선 곤란하다. 어떤 결말이든지 그 동안 진행되어 온 분위기에 걸맞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결말은 어떻게 되는가? 수간호사를 죽일 뻔한 맥머피는 붙잡혀 병원측이 자행한 전기 충격 요법에 의해 식물인간이 된다. 그러자 그 동안 맥머피로 인해 심리적으로 변화를 겪은 인디언 치프가 맥머피를 안락 안락사시키고는 그가 충고했던 대로 수도관 모체를 던져 창문을 깨뜨리고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데서 마무리된다. 병원에서 맥머피가 등장하는 데서 시작했다가 결국 그가 죽은 데서 영화가 끝나지만, 작가는 그의 대변인인 치프가 병원을 탈출하는 설정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희망을 주고자 했다.
< 폴 몬티>의 결말은 거의 절정과 동시에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막판에 참여를 거부했던 가즈가 아내와 따라온 아들의 권유로 쇼 중간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스트립쇼는 성공하고, 그들이 무대 위에서 옷을 완전히 벗어 던질 때 화면이 정지되며 영화는 끝난다.
구성이란 단순하게,도입,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식으로 배열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그런 배열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극적으로 짜임새 있게 해내느냐가 문제이다. 그러기 위해선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처럼 각각 인물들의 묘사가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치밀한 복선이나 반전, 아이러니 기법 등이 필요하다. 특히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전반적으로 코미디 장르를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스토리 전개에 큰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역시 코미디 장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폴 몬티>는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만큼 치밀하거나 심각하진 않지만 좀 더 쉽고 대중적(서민적)이다. 그리고 가볍지만 사회 현실의 한 단면을 건강하게 풍자한 영화로서 나름대로 큰 가치가 있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같은 작품은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아도 뛰어난 연출력이 받쳐 주지 못하면 완성도가 약해질 수 있지만 <폴 몬티>같은 작품은 웬만한 연출자면 충분히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만큼 시나리오의 힘이 컸다고 본다. 그리고 그 작품에선 사실상 절정과 결말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즉 절정에 이르는 어느 순간에서 끝냄으로써 결말을 대신한다. 그런 방식은 종종 할리우드적인 구성 방식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선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좀 더 인상적으로 남을 수 있었으니까. 때로는 이처럼 절정과 결말이 합쳐질 수 있고, 위기와 절정이 동시에 겹쳐질 수도 있으니 내용에 따라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3. 복합적 구성
< 시민케인>
거대한 부를 소유한 케인이라는 인물이 죽자, 한 방송사 기자는 케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로즈 버드'라는 말에 그의 삶의 비밀이 담겨 있을거라고 생각하고는 그 의미를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기자가 케인이 살아 생전에 가까웠던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게 되면서 회상이 시작된다. 케인의 후견인이었던 대처, 친구인 르랜드, 그의 충복 번스타인, 그의 두 번째 부인 수잔 등을 통해 케인이 어린 시절 평범한 하숙집의 아들에서부터 어떻게 신문사 등 거대한 부를 소유한 부자가 되어 막강한 파워를 가졌다가 나중에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되었나가 보여진다.
이 구성은 일종의 미스터리적인 설정을 기조로 한다. 즉 '로즈 버드'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추적하는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 모티브는 케인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사용되는 극적인 장치일 뿐이니까. 만약에 이 스토리가 서사적 스타일로 구성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큰 주제인 무한한 권력을 꿈꾸다 파멸하는 맥베스적인 인간을 다룬다는 의미는 전달할 수 있었지만, '로즈 버드'라는 극적인 모티브는 효용가치가 없어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한 인물에 대해 사람마다 달리 평가하고 바라볼 수 있다는 주제의 핵심 중 하나가 약화되었을 것이다.
< 대부>
속편치고 전편보다 나은 작품은 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나는 [대부2]를 보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보록 전편 [대부]에 비해 대중적 공감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그 이야기의 깊이는 훨씬 �어나다. 그 힘중 하나는 역시 전편의 직선적인 내레티브완 달리 회상 방식에 의한 복합적 구성에 있다. 평론가 존 헤스에 의하면, 코폴라는 [대부2]에서 관객의 단순한 몰입보다는 이화감을 창조하기 위해 비직선적인 내레티브를(일종의 변증법적인 구성을) 사용하여 그 자신이 제시한 미국 문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인 분석을 명확히 인식하도록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관객은 이화감보다는 또다른 차원으로의 몰입을 함으로써 인간과 사회구서의 본질에 대한 섬칫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 비토의 뒤를 이어 돈 콜레오네가 된 마이클의 회상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회상장면에선 아버지 비토가 시실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마피아의 보스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보여지고, 현실 장면에선 역으로 이미 거대하게 성장한 마피아 보스 마이클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각각 5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과거 아버지의 성장과 현재 아들의 몰락 시퀀스가 병행되면서 보여지고 있는데, 비교의 핵심은 어떻게 성공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왜 불가피하게 실패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라쇼몽>
어떤 평론가는 [라쇼'D]을 [시민 케인]의 일본판이라고도 얘기하는데, 그건 스토리보다는 구성적인 면에서의 유사함 때문이다. 구로사와감독은 숲속에서 일어난 살인과 강간에 대한 하나의 진실에 대해, 거기에 관련된 4인의 인물들이 각자 다르게 증언하는 상황을 회상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진실이란 그야말로 상대적이다.'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스토리에는 사실상 복합적 구성이 필수적이다. 즉 구성 자체가 주제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상 방식 구성을 한 작품들이 한 주인공의 시점에서만 보여지는데 반해 이 작품은 숲속에서 일어난 살인,강간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재구성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똑같은 장면을 사람마다 달리 회상을 통해 반복해서 보여 준다.
< 애니홀>
1977 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각본상을 수상한 우디 알렌의 [애니홀]은 주인공 앨비가 애니 홀이란 여자와 헤어지고 나서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마치 정신분석을 하듯이 과거를 돌아보는 식으로 구성된다. 이 작품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산딸기](Wild Strawberry)나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처럼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적 시각에서 회상 방식이 전개된다. 실제로 작품속에서 정신 분석을 받고 있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앨비는 자신의 어린 시절, 애니 홀을 만나기 전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 애니 홀을 만나 연애하게 된 시절, 그녀와 헤어지게 된 에피소드 등을 하나씩 회상한다.
그 복합적 구성은 이미 언급한 세 작품에 비해 다소 복잡하다. 과거속에서 또 다른 과거(대 과거)를 회상하거나 잉그리만 베르히만 식으로 현재와 과거가 한 화면 속에 공존하는 연극적인 회상 방식도 도입된다. 시간 연대순으로 회상되지 않고 주인공의 감정 리듬에 따라 시간 순서가 막 뒤바뀌기 일쑤다. 또한 회상을 시작하는 현재 시점은 처음과 끝에서만 보여지고 나머진 내레이션으로 대치되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진행되진 않는다. 대신 과것에서 또다른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오히려 병치되어 보여지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한 구성 방식은 어쩌면 앨비의 다소 산만한 정신 세계를 보여 주는 데는 무척 효과적인 것일지라도 모르지만 자칫하면 산만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복잡한 구성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오히려 신선한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애니홀]은 내용과 형식이 일치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저수지의 개들>
보석 상점을 털다가 경찰에 쫓겨 창고에 모인 일단의 갱들이 그들 사이에 경찰 프락치가 있다고 서로를 의심하다 내분이 일어나 거의 다 죽고 한 사람은 경찰에 잡힌다는 스토리다. 타란티노는 그 작품을 종래의 갱스터 무비와 다르게 구성했다. 가령 기존의 갱스터 무비는 대부분 직선적인 내레티브를 통해 스토리 중심으로 풀어 나갔지만, [저수지의 개들]은 철저히 정통 드라마트루기를 해체시켜 나간다. 어떻게 보면 [애니홀]과 유사하게 복잡한 회상 방식이긴 하지만, 좀 다른 것은 자막을 상용해 갱단들의 면면을 인물 중심으로 회상해 나간다는 것이다. 가령, 첫 장면에선 갱단들이 상점을 털기 전에 모여 식사하는 걸 보여 준 다음,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들이 이미 털고 나서 경찰에 쫓기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그들이 최초로 갱단의 강도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된 사연이 인물별 회상을 통해 드러난다. 내레티브는 주로 경찰에 쫓겨 창고에 모인 갱들이 누가 프락치냐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과 그들이 범죄단에 들게 된 에피스드, 그리고 그들이 보석가게를 털다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쫓기는 장면 등 세가지 이야기가 병행되어 서술된다. 기존 갱스터 무비 같으면 당연히 보석 가게를 터는 장면을 자세히 보여 줄 텐데, 타란티노는 그 장면을 과감히 생략해 버렸다. 오히려 범죄 이후 경찰과의 대립보다는 갱들끼리의 내부 대립을 핵심 갈등 요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발상이다. 회상 방식에 있어서도 연대기적인 순서를 무시하고 마치 채널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며 청취자가 원하는 곡을 듣는 방식으로 에피소드를 조합해 가고 있다.
실제로 [저수지의 개들]의 내레티브 전개 방식은, 타란티노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일당들의 모의가 실패로 돌아가는 내용을 뉴스 영화와 다큐멘타리를 차용해서 만든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1956)처럼 라디오 프로그램을 차용해서 구성한 영화이다. [저수지의 개들]은 갱스터 음악실이고, 개성 있는 다양한 다양한 색깔의 갱들은 마치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된 손님처럼 자기들의 무용담을 떠벌린다. 자유로운 토크쇼처럼 순서도 없다. 일정 시간 동안 부스(창고)안에서 그들의 보석 강도에 대한 이야기와 밀고자로 인해 경찰에 잡힐 뻔한 이야기를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에필로그는 확실하게 있다. 홍콩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훨씬 더 극적으로 표현된다. 지금까지의 살펴본 다섯 편의 영화 유형들은 복합적 구성 방식의 몇가지 대표적인 실례를 보여 준다.
그외에 대부분의 영화들은 위와 같은 구성 형식들의 변형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몇몇 작품은, 비록 그 바탕은 과거 복합적 구성의 재해석이긴 하지만, 구성 그 자체가 매우 독창적인 경우도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산다]가 그런 실례에 속한다.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도 재미있는 구성으로 언급할 만하다. 치밀하게 조립된 퍼즐 게임 같은 그 작품은 사건의 절름발이 용의자 킨트가 증언의 대가로 석방을 약속받고는 그 동안의 범죄 행각의 전모와 주범에 대해 고백하는데, 그 상황이 회상(플래시 백)을 통해 보여진다. 범죄 사건의 디테일들이 경찰서에서 증언하는 킨트의 상황과 병치되어 보여지다가 증언이 끝나 풀려난 킨트가 절름거리며 걷다가 갑자기 정상으로 걷는 다리 모습을 보여 주는데서 그가 주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를 취조한 경찰은 그 동안 그가 증언한 내용들이 모두 꾸며진 거짓 내용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를 뒤쫓는 데서 끝난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회상은 마치 [라쇼몽]의 회상처럼 진실이 아닌 일전까지만 해도 그 동안 보아 온 회상 장면을 리얼리티로서 받아들이다가 나중에 가서야 그 동안 보았던 것들이 모두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또 다른 독특한 복합적 구성의 실례는 아마 구로사와 아키라의 [산다](1952, 143분)라는 작품이 아닐까?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한 중년 공무원의 이야기를 다룬 그 작품은 내(이정국감독)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 스토리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주인공 와타니베가 시한부 병에 걸린 걸 알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방황하다가 한 젊은 여자와의 잠깐 동안의 만남을 통해 뭔가를 깨닫고 행동에 나서는 데까지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스토리 전개는 부분적인 회상을 빼곤 직선적인 내레티브 방식이다.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와타니베가 죽기 직전 어떤 일을 하다 죽었나를 자세히 보여 주지 않은 채 바로 주인공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의 구성 핵심은 여기서부터 진행된다. 즉 죽은 주인공의 영안실 앞에서 그의 주변 사람들(시청 동료, 시민 등)이 그가 죽기 직전의 행로(전반부에 생략했던)에 대해 하나씩 회상해 가는 복합적 구성에 의해 보여 준다. 즉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회상 방식 수법을 사용한 게 아니라 전반부만 직선적인 내레티브를 사용하고, 바로 몇 개월을 건너 뛴 다음 다시 그 건너 �었던 상황을 회상(플래시 백)을 통해 드러냄으러써 단순한 멜로 드라마를 뛰어넘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게끔 해준다. 후반부에서 보여 준 주인공 와타나베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은 마치 [시민케인]에서 케인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회고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 산다]의 그러한 구성 방식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를 표현하는 데 아주 적절했던 것 같다. 누벨 바그 영화 감독들의 정신적인 스승이라고 불리는 영화 이론가 앙드레 바쟁은 그 작품에 해한 감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구로사와의 [산다]를 보고 난 후에 나는 이 영화가 펼쳐 보여 준 풍부한 지적, 도덕적, 심미안적 세계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 영화는 내용뿐 아니라 시나리오에서도 비교할 수조차 없이 중요한 가치들을 용해시켜 놓았다.'
4. 에피소드식 구성
지나치게 기승전결식의 정통 드라마트루기에 얽매이지 않고 극적인 에피소디를 엮어서 구성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런 구성 방식은 할리우드 영화에선 금기시하곤 한다. 왜냐하면 관객의 감정을 이입시키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일정한 주제 아래 에피소드를 적절히 연결하는 구성 방식을 취한 영화들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 그런 영화들은 진지하게 작품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성은 떨어진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선 때론 여러 번 감상해야만이 그 내레티브를 정학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다소 복잡한 구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흥행에 성공한(크게는 아니지만) 경우도 있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이나 송능한 감독의 [넘버3](1997)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런 작품은 워낙 각각의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이 재미있어 관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끌어냈지만, 한편으론 직선적인 내레티브를 통한 할리우드적인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기도 했다.
로버트 알트만은 [숏 컷]과 [패션쇼]등의 작품을 통해 에피소드식 구성에 의한 영화 만들기에 성공한 감독이다. 특히 [숏 컷](Short Cuts, 1993, 188분)은 미국 L.A 교외의 한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백인 중산층들의 일상을 다양한 인물들의 에피소디를 통해 풍자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역시 그들 작품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도 일종의 에피소드식 구성에 의해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잘 그려낸 작품에 속한다. 대개 지적인 감독들은 전통적인 내레티브 방식보다 이런 식의 남다른 내레티브 방식을 선호하고 실제로 영화 애호가들 입장에서 색다른 맛을 주긴 한다. 당연히 대중들 입장에선 적응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작가나 감독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관객들인 영화 애호가들이니까.
에피소드 구성 중에 관심을 끄는 것은 [펄프픽션]이나 밀코 만체브스키의 [비포더 레인](Before the rain,1994,113분)처럼 순환적인 구조이다. 즉 영화의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마치 원형처럼 고리를 이루는 구성을 말한다. [펄프픽션]은 첫 신이 단역급에 해당하는 두 뜨내기 남녀강도가 카페에서 강도짓을 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되어 주인공들의 여러 상황들이 보여지며(주인공들 시각에서)그 뜨내기 강도들과 주인공들이 만나는 식으로 구성된다.
[ 비포 더 레인]의 경우도 처음과 끝이 똑같은 구조지만 [펄프픽션]과는 좀 차원이 다르다. 마케도니아가 주 배경인 그 작품은 각각 말, 얼굴, 사진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세 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졌는데, 도입부는 알바니아의 회교도 소녀 자미라가 들판을 가로 질러가 한 수도원에 숨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가족에게 쫓기던 그 소녀가 죽고, 공간은 과거의 영국 런던으로 옮겨져 사진 잡지 편집장 앤과 그녀의 애인인 사진 작가 알렉산더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스케티되다가 알렉산더가 자신의 고향인 마케도니아로 가자 이제 스토리는 다시 마케도니아의 기독교, 회교 간의 싸움 속으로 옮겨간다. 거기서 알렉산더는 자미라를 구하려다 자신은 죽고 자미라는 도망가 수도원으로 피신하는 첫 장면으로 다시 이어진다. 이러한 원형 구조는 '폭력의 무자비한 악순환'이라는 [비포 더 레인]의 주제를 표현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펄프픽션]과 [비포 더 레인]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그 형식의 독창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사실 그런 원형 구성의 원리는 이미 1946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악몽의 밤](Dead of Night, 102분)이란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알베르토 카발칸티를 비롯한 네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한 그 작품은 공포와 환타지가 섞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지닌 에피소드들로 이뤄져 있는데, 한 건축가가 별장 개축을 의뢰받고 별장에 도착하는 데서 시작된다. 건축가가 그 별장의 사람들로부터 다섯가지의 기괴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을 언젠가 보았고, 그들의 이야기들도 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중에 가면 그 모든 것이 꿈이나 환상처럼 애매모호하게 보여지고 그가 다시 전화를 받고 도입부와 똑같이 그 별장에 도착하는데서 끝난다. 1940년대에 어떻게 그런 과감한 구성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작품의 형식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나는 그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요즘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과거에 있었던 영화들의 변형이거나 재해석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5. 수필적 구성
프랑스 누벨 바그 감독들 이전만 해도 영화는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구성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다르, 뜨뤼포, 알랑 레네 등과 같은 감독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영화에 있어서 구성이 다양해졌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감독들은 유행처럼 기존의 정통 드라마트루기 방식을 거부하곤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감독들이 다시 전통적인 내레티브 방식으로 회귀하긴 했지만 고다르만은 여전히 자기 스타일을 고집했다.
그의 스토리 전개 방식은 마치 수필을 쓰듯이 자유롭다. 종래의 내레티브 전개처럼 기승전결이 없이 감독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의 첫 작품[네 멋대로 해라]는 그나마 최소한의 기존 내레티브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 만들어진 [여자는 여자다], [미치광이 피에로]등과 1970년대 이후 작품들은 영화광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전통적인 내레티브 전달 방식을 무시하고 있다. 고다르 이후 많은 영화학도들이 그의 흉내를 내려고 했으나 대부분 실패하곤 했다. 사실 수필식의 내레티브 전개방식은 시나리오 초심자들에겐 극히 위험하다. 자칫하면 자아도취나 관념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더라도 전통적인 내레티브 구성 방식에 대한 기본기는 되어 있어야 나름대로 중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나마 수필식의 내레티브 구성에 성공한 현대 감독은 왕가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아비장전]이나 [중경삼림]같은 작품은 부분적으론 에피소드적인 구성을 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수필을 쓰듯이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왕가위의 그런 영화도 자세히 보면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 다큐멘타리 구성
이란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같은 작품은 어떤 구성일까? 마치 다큐멘타리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리얼하게 한 소년의 모습을 그린 그 작품은 확실히 할리우드적인 드라마 구조완 달라 보인다. 극적인 설정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아주 담담한 방식으로 주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 작품조차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기본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전통적인 극적 구성이나 관객의 공감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타리적으로 스토리를 풀어 나가는 작품은 의외로 많다.
에밀 꾸스트라차의 [집시의 시간]이나 올리버 스톤의 [JFK],[내처럴 본 킬러스], 코스타 가브라스의 [계엄령, [Z], 우디 알렌의 [돈을 갖고 튀어라], [부부일기],[젤라스], 그리고 스콜세지의 대부분 작품들이 그런 구성 방식을 사용하는 예에 속한다. 이 스타일은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조작된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느낌을 보다 강하게 반영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똑같은 대상을 어떤 구성 방식으로 접근하는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스콜세지 영화와 코폴라 영화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마피아 세계에 대한 두 사람의 접근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대부]와 [좋은 친구들]을 비교해 보자. 코폴라의 [대부]는 직선적인 내레티브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주관적인 시각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를 폭로하지만 마피아가 상당히 미화되고 있는 반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은 다큐멘타리적인 극적 구성을 통해 마피아의 일상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부]는 철저히 관객의 동일화를 유도하는 반면 [좋은 친구들]은 기승전결식의 치밀한 짜임새를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보다는 주로 인물의 행동을 다큐멘타리 찍듯이 뒤쫓아 가면서 찍어 긴장을 만들어 낸다.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1975), [카지노]등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스콜세지는 자신의 영화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을 [대부]시리즈와 비교해 '내 영화는 코폴라 영화와 비교한다면 거리의 다큐멘타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같은 구성은 같은 권투 소재 영화 [록키]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대중들에겐 확실히 [록키]처럼 전형적인 정통 드라마트루기 식으로 만든 작품이 재미있겠지만, 작품의 치열한 깊이나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있어선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성난황소]는 권투 선수에 대한 상투적인 영웅주의 관점이나 묘사에서 벗어나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조작하지 않고 아주 진실하게 접근한 점에서 [록키]에 비해 훨씬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대만의 후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도 스콜세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다큐멘타리적인 스타일이다 .특히 [동년왕사], [동동의 여름방학], [팽퀴섬에서 온 소년]등을 보면 기존의 드라마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주의적인 느낌으로 마치 삶을 관조하듯이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장이모우 영화 중에서 뛰어난 형식을 보여 준 [귀주 이야기]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비록 드라마적인 구성을 하긴 했지만 마치 '귀주'라는 한 농촌 여인에 대한 세미 다큐멘타리를 보는 느낌이다. 그런 작품들은 정통 드라마트루기에서 강조하는 위기나 절정에 대해 그다지 강박관념을 갖지 않고 구성한다. 그런 구성 방식에서 중요한 핵심은 얼마나 진실과 리얼리티를 객관적으로 잘 표현해 내느냐에 있다.
7. 신화적인 구성에 대하여
정통 드라마트루기에는 스토리를 풀어가는 몇가지 구성 방식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신화적인 구성인데, 대개 서부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가령 조지 스티븐스의 [셰인]이나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같은 서부 영화에서 불의가 판을 치는 마을에 정의의 총잡이(들)가 등장하여 악당들을 물리쳐 정의를 이룬 다음 그곳을 떠난다는 식의 구조처럼 말이다. 신화적인 구성의 원리는 일정한 공간에 한 영웅이 등장하여 그곳을 변화시킨 다음 떠난다는 구성이다. 그것은 꼭 서부영화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머피가 정신병원에 들어와 억압적인 시스템 하에 있는 환자들 편에 서서 병원측과 대항하다 일부 환자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후 죽음으로써 병원을 떠난다는 구성도 마치 서부 영화처럼 일종의 신화적인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한 신화적인 구성 원리의 핵심은 '도입부에 영웅이 일정한 공간에 등장했다가 마지막에 떠난다'는 것과 '영웅에 의한 변화'이다. 그 변화란 정의 실현, 진실 캐기, 교훈적인 행동, 진리에 대한 자각 등이다. 그 원리를 따르려면 일정하게 한정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져야 하고, 그 공간은 영웅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불의나 모순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웅을 등장시켜 그곳에서 불의와 모순을 타파하고 정의를 이룸과 동시에 억압받던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런 후 반드시 그 영웅은 어떤 형식으로든 그 공간을 떠나도록 한다. 그런 신화적인 구성은 존 포드나 구로사와 아키라 등과 같은 감독에 의해 무척 애용되었다. 특히 구로사와는 사무라이 영화의 걸작들인 [칠인의 사무라이]나 [요진보], [쓰바키 산주로] 같은 영화에서 그런 신화적인 구성을 통해 영웅(들)을 묘사하고 있다.
신화적인 구성은 과거 서부 영화에서 전형화된 틀로 사용된 후, 현재까지도 다양하게 변형되어 자주 사용되어 왔다. 키팅 선생이 억압적인 공립학교에 부임해 와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친 후 떠나는 스토리를 다룬 피터 웨어의 [죽은 시인의 사회], 지구에 식물 채집을 하러 왔다가 소년과 우정을 나누고는 다시 떠나는 외계인을 다룬 스필버그의 [E.T], 옛 친구 집에 왔다가 친구의 아내를 차지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비디오 테이프], 아내를 만나기 위해 최첨단 빌딩에 들어갔다가 테러범들과 싸워 수많은 인질들의 목숨을 구하고 빌딩을 나서는 경찰을 다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이하드]등이 모두 그런 신화적인 구성 방식의 원리를 취하고 있다. 그 외에 알트만의 [M.A.S.H], 존 슐레진저의 [미드나잇 카우보이],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장 자크 아노의 [장미의 이름]등도 그런 예에 속한다.
직선적인 내레티브 구성에서 신화적인 방식이 자주 이용되는 것은 그만큼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구성 틀은 사람들에게 본성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마치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나(태어나) 많은 변화와 갈등을 겪다가 다시 떠나는(죽는)것과 같은 원초적인 구성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8. 스릴러와 미스터리적 구성
정통 드라무트루기를 가진 할리우드 영화에선 신화적인 구성 외에도 극적인 재미를 위해 스릴러적인 구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정통적인 드라마트루기 구성방식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구서을 하고 있는,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에서 관객들은 영화 초반부터 상어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감을 느끼며 영화를 본다. 만약 도입부에 한 여대생이 밤바다에 수영하러 들어갔다가 죠스에게 잡아먹히는 끔직한 장면을 배치하지 않고, 바로 시작하였다면 극적 긴장의 강도는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상어에 대한 공포는 실제보다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함으로 더 크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은 헨리 제임스의 공포소설 <나사의 회전>서문에 나오는 '독자들에게 악에 대한 비전을 강화시키는 방법은 독자 스스로가 자신의 경험, 상상력, 동정, 공포등에 비추어 악마를 생각해 내도록 만드는 것이다'라는 조언에 따른 것이다. 스필버그는 초반 바다 장면에서 죠스의 악마성을 직접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배치함으로써, 이후에 관객들이 바다를 더 이상 낭만적인 대상이 아닌 공포의 대상으로 느끼도록 만들었다.
스필버그의 상업 영화는 대부분 영화 초반에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조적인 성격을 띤 극적인 사건을 배치하는 구성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런 원리는 주로 히치콕에 의해 자주 사용된 서스펜스 구성 방식이다. 히치콕은 서스펜스와 미스터리의 구성 차이를 사전에 정보를 주느냐 안 주느냐에 구분한다. 즉 서스펜스는 사전에 살인자에 대한 사전 정보를 주고 그가 어떻게 잡힐 것인가, 또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을까에 대해 긴장하게끔 하는 것이고, 미스터리는 살인자에 대해 사전 정보를 주지 않아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가령 그의 작품 [프렌지]에서는 도입부에서 넥타이로 살해당한 여자가 강가에서 발견되는 게 보여지고, 다음 장면에서 바로 똑같은 무늬의 넥타이를 매는 주인공을 보여 준다. 관객들은 그가 살인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지만 잠시 후면 그의 친구가 진짜 살인범이고 주인공은 무고하게 누명을 쓰게 될 거라는 걸 보여 주고 스토리를 전개한다. 초반에 정보를 제공받은 관객들은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광적인 살인범이 다른 여자들에게 접근할 때마다 또 살인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고, 주인공이 경찰에 쫓길 때는 그가 빨리 누명을 벗길 바라면서 본다.
[ 밧줄](Rope)이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동성애 관계인 두 대학생이 다른 친구를 밧줄로 목졸라 죽여 상자 속에 넣은 것을 보여 준 후, 바로 등장한 파티의 손님들을 상대하는 그들 두 살인자를 보여 준다. 관객들이 언제 그 상자 속의 시체가 발견될 것인가를 긴장하며 바라보게끔 영화 전반이 구성되어 있다.
몇 년 전 극장에서 [양들의 침묵]을 보았을 때, 그 도입부에서 여자 FBI 요원인 스탈링(조드 포스터)이 식인 살인자 렉터 박사를 만나러 감옥에 갈 때 마음 졸이고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에 그 장면 바로 전에 스탈링의 상관에 의해 렉터 박사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살인자인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않았다면 그런 서스펜스가 느껴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영화 후반에서도 스탈링이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의 집에 들어섰을 때, 어둠 속에서 야간 투시경을 쓴 살인자가 그녀를 뒤에서 공격하려고 하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고 주인공은 모르기에 훨씬 긴장 강도가 커졌다. 이런 서스펜스 스릴러의 원리는 사전에 정보를 주느냐 안 주느냐에 달려 있다.
서스펜스 스릴러는 종종 미스터리와 혼합되어 사용된다. 가령 [양들의 침묵]은 연쇄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로 시작해 나중에 범인이 소개되고 나면 그 범인이 어떻게 잡힐 것인가에 대한 서스펜스로 전환된다.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도 마찬가지다. 과연 영화사 간부인 그리핀 밀의 협박범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를 주조로 깔고, 다른 한편으론 우발적인 실수로 작가를 살해하게 된 그리핀 밀이 경찰에게 잡힐지도 모른다는 긴장 상황이 지속된다. 주의할 것은 진지하고 리얼리즘 스타일의 스토리를 지나치게 서스펜스 스릴러적인 장르로 포장하면 그 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제에 따라 구성 방식을 적절히 잘 적용해야 한다.
방법론적이기보단 조금 어려운 부분인 듯 합니다.
참고하세요.
구성 -내러티브 구축하기
1. 구성이란 무엇인가.
시한부 병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라면, 그가 시한부 병에 걸린 것을 주인공이나 관객에게 미리 알려주고 시작하느냐, 후반에 가서야 비로소 알려주느냐, 아니면 주인공만 모르고 관객에게만 미리 알려주었다가 나중에 모두 알게 하느냐, 그것도 아니면 주인공 관객 모두 모르게 한 다음 나중에 가서야 같이 알게 하느냐에 따라 각각에 대한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에 대한 결정은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노리느냐에 따라 달리 할 수 있는 문제이다.
2. 직선적인 내레티브 구성
구성을 얼마나 잘 하느냐느 주어진 스토리의 에피소드를 어떻게 극적으로 잘 배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관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치밀하게 잘 짜여진 시나리오란 어떤 곳인가에 대해 공부하려면 스필버그와 히치콕의 영화를 분석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프랑수와 뜨뤼포는 '최소한의 요소로부터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다'라는 시나리오의 구성원리는 히치콕의 <오명>(Notorious)이란 작품을 두고한 얘기라고 언급한 바 있지만, 내 생각엔 히치콕의 모든 영화가 그런 구성 원리를 보여 준다고 본다. 즉 히치콕은 복잡한 구성이 아니라 간결한 상황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가 최대한의 효과르 내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정통 드라마투루기의 역사는 대개 고대 서양의 희곡이나 문학에서 보이는 발단,전개,결말이라는 형태에서 시작된다. 물론 우리 동양의 한시에도 기승전결(起承轉結)같은 기본구성 원칙이 있었다. 그런 구성방식은 어떤 법칙이 먼저 존재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일정한 스토리에서 예술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원리였을 것이다. 연극에선 세익스피어의 희곡이 그런 구성 원리의 모범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① 발단-전개-결말
② 기-승-전-결
③ 도입-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특히 위기, 절정, 결말 부분에서 소홀하거나 그 감정의 강도가 약해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위기 지점에서 제대로 위기를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구성인 것이다. 시나리오가 좋은가 나쁜가는 사람에 따라서 도입부가 재미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나는 후반부 즉, 위기, 절정, 결말 단계가 얼마나 잘 돼 치밀하게 구성되지 않고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a. 도입 - 프롤로그
코미디일지, 멜로일지에 대한 장르 예측을 도입 단계에서 확실히 해 줘야만 관객들이 혼란감을 느끼지 않는다. 코미디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나중에 멜로나 스릴러가 되어 버리는 식으로 된다면 일관성이 없어 감정적인 리듬이 깨져 버릴 것이
경험상 도입부가 재미없으면 전체적인 내용도 뻔하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전체적인 이야기를 잡아 놓고도 막상 시나리오로 쓰고자할 때 첫 신을 어떻게 써내려 갈까로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성취한 영화 중 하나인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129분>를 보자.
작품의 도입부는 맥머피가 등장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정신병원에 처음 수용되어 환자들과 환자들과 인사하고 앞으로 그와 팽팽하게 대립하게 될 인물인 수간호사 라치엣, 그리고 원장 스피비 박사와도 대면하는 상황이 보여진다.
b. 발단-갈등의 시작
말 그대로 사건의 발단이 되는 지점이다.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관객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앞으로의 장면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긴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조차 영화 속에서 보여질 구체적인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면 아마 관객들은 '이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하면서 짜증낼 것이다.
특별한 예술 영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갈등은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런 갈등은 영화 중반부 이전에 시작되는게 상례이다. 너무 늘어지면 지루해지기 쉬우니까. 상업 영화에선 극적 갈등을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재미없는 영화들은 확실히 갈등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영화들이 애초부터 갈등을 안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들은 의도했지만 그런 갈등이 객관적으로 그다지 갈등답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일 것이다.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의 발단은 환자들과 디스커션 요법에 참석했다가 그들이 정신병원에 오게 된 배경을 알게 된 맥머피가 점차 규칙이라는 미명하에 환자들을 병원 일정에 맞추고 강압적으로 통제하려는 병원 수간호사와 대립하게 되는 설정이다. 맥머피는 다른 환자들이 수간호사에게 고분고분 순응하는 것과는 달리 음악이 시끄러우니 줄여 줄 수 없냐는 식으로 점차 반항하고 대립하게 된다. 여기서 관객들은 앞으로 맥머피와 수간호사 라치엣과의 대결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다음 상황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이안의 <결혼 피로연>에서의 주요한 갈등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들을 결혼시키기 위해 대만에서 온 부모(특히 아버지)와 미국 남성과 동성애중인 젊은 아들 위동 사이에서 일어난다. 즉 동성애 동성애자인 위동이 고전적인 결혼을 바라는 아버지와 어떻게 타협을 이룰 것인가가 그 작품의 주요 갈등이 된다. 그 갈등의 시작은 발단 부분에서 위동의 아버지가 갑자기 미국으로 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c. 전개
전개는 발단에서 드러난 극적 갈등이 구체화되고 심화되는 지점으로 여러 단계 중 가장 많은 분량이 소요된다. 여기서 여러 가지 극적인 과정을 겪다가 위기로 다가간다. 그러기에 이 지점에선 위기를 진정 위기로 느낄만한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풍부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야 똑같은 상황을 전달할지라도 훨씬 극적일 것이다. 나중에 절정 지점에서 일어날 극적 반전이나 인상적인 결말을 위한 복선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전개 부분에선 맥머피가 환자들에게 활기와 자신감 및 자유 의지를 은연중에 심어 주기 위해 그들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수간호사와 자주 대립하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보여지는 주요 에피소드는 맥머피가 디스커션 요법 시간에 월드 시리즈 야구 중계 방송을 보자고 제안했다가 실패하고서 수간호사와 다툼을 벌이는 상황, 환자들을 태운 정신병원 수용 버스를 탈취해 창녀들과 함께 낚시 여행을 떠나는 설정 등이다. 이들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맥머피가 어떻게 환자들을 변화시키나를 아주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수도관 몸체 들어올리기 게임은 라스트 신에서 인디언 치프가 병원을 탈출하는 방식에 대한 복선을 제공한다.
영국 영화<폴 몬티>(1997)의 경우, 적은 예산으로 어떻게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점에서 자본이 영세한 우리 한국 영화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 작품이 아주 새로운 형식을 가진 건 아니다. 단지 컨셉이나 상황 설정이 재미있을 뿐 작품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하기엔 내레티브가 너무 단순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영화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할리우드적인 구성의 모범을 보여준다.
도입 단계에선 철강으로 번창했던 셰필드란 도시에 불황이 닥쳐 철강 회사가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자 문을 닫은 철강 회사에서 한때 그 회사 노동자였다가 이젠 직장을 잃은 실업자 가즈와 친구 데이브가 몰래 철근을 빼돌리려다 실패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들은 우연히 남성 스트리퍼들이 춤을 추는 한 술집이 여자들에게 크게 인기 있는 걸 보게 된다.
사건의 발단은 결국 직장을 구하는 데 실패한 가즈와 데이브는 그 자신들도 남성 스트리퍼가 되어 돈을 벌어 볼 생각을 하며 거기에 참여할 단원들을 하나씩 모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들 대부분이 사연이 많은 실업자들이다. 가즈 자신은 아들이 하나 있지만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 이혼한 아내에게 양육권을 뺏길 처지에 있다. 뚱보 친구 데이브는 직장을 잃은 후 아내와의 잠자리에 문제가 있다. 롬퍼는 자살을 시도하다 데이브의 도움으로 살아나 같이 어울린다. 제랄드는 아내를 속이고 6개월째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속이며 일자리를 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제랄드를 끌어드이는 가즈는 오디션을 거쳐 흑인을 포함 두 사람을 더 뽑아 정식으로 스트립 단원을 조직한다.
가즈와 데이브가 스트립 단원을 뽑기 위해 사람들을 하나하나 끌어 모으는 방식은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칠인의 사무라이>에서 칸베이라는 떠돌이 사무라이가 산적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농부들을 도울 정의의 사무라이를 하나씩 모집해 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가즈를 비롯한 남성 스트립 쇼단은 춤을 출 줄 아는 데이브의 도움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하는 데서 전개 부분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순조롭지 않다. 그들의 계획이 순조롭다면 영화는 재미없을 것이다. 당연히 어려움을 겪는다. 뚱보 데이브가 자신은 배가 나왔기 때문에 스트립쇼를 하면 웃음거리가 된다며 중도에 포기하고 백화점 경비원으로 취직을 해버린다. 거기에다가 가즈 일행은 텅 빈 철강 회사에서 몰래 스트립 리허설을 하다가 경비원에게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생긴다.
d. 위기-극적인 반전
그 동안 진행되어 오던 갈등이나 사건이 큰 변화를 겪는 단계가 바로 위기다. 대개 주인공들이 큰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 보여진다. 특히 이 지점에서 주인공이 위기를 겪을 때, 그 동안 동일화되어 온 관객도 똑 같은 심정으로 위기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극적 상황을 위해선 반전이 자주 활용된다.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에서는 주인공 렌턴이 마음 잡고 부동산 소개업을 하는데, 예전의 망나니 동료들이 찾아와 고민하는 시퀀스가 일종의 위기다. 렌턴은 그들을 배반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한다.
< 다이하드>에서는 맥클레인 형사와 테러범들이 대립해 싸우던 중 인질 중에 신분을 숨기고 있던 맥클레인의 아내가 테러범들에 의해 들켰을 때 위기가 발생한다. 테러범들은 즉각 아내를 인질로 맥클레인 형사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안의 <결혼 피로연>에서의 위기는 부모 때문에 동성 연애자인 위동이 중국 유학생 위위와 위장 결혼을 하였는데, 그녀가 임신을 했을 때 일어난다. 아버지는 아들이 위장 결혼한 줄도 모르고 대를 이을 자식을 가졌다고 좋아하고, 위동은 아이를 때려 하고... 결국 그런 위기는 위위가 아이를 낳고 위동은 사이먼과 동성 연애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절묘한 타협으로 해결된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위기는 그 동안 정신병원에서 일정 기간만 있으면 퇴원할 것으로 알고 있었던 맥머피가 간호부에 의해 자신은 특별 관리 대상이고 연장 구금되어 있는데다 어쩌면 영원히 그 병원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온다. 또한 맥머피는 그때서야 비로소 강제 구금되었을 거라고 예상했던 대부분의 환자들이 자진해서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고 자신처럼 강제 구금 대상인 인디언 치프에게 탈출을 제안한다. 그 동안 말도 없이 벙어리로만 여겼던 치프가 알고 보니 말을 할 줄 안다는 반전도 이 지점에 있다. 어쨌든 주인공 맥머피는 탈출이냐, 영원히 정신병원 신세냐의 기로에 선다. 그런 와중에 그는 디스커션 요법 시간에 소동을 일으키다 간호부들과 싸움이 붙어 그 벌로 전기 충격 요법까지 받게 됨으로써 감정적인 폭발 직전에 있게 된다. 그래서 탈출을 계획한 그는 밤에 몰래 병동 내로 창녀들을 불러들여 환자들과 함께 요란스런 파티를 즐긴 후 창문을 열고 도망가려다 술에 취해 잠이 들고 만다.
< 폴 몬티>에선 어떻게 위기가 닥칠까? 가즈 일행은 경찰에 입건된 후 무혐의로 바로 풀려나지만 주변의 웃음거리가 되어 그들의 남성 스트립쇼에 대한 꿈은 좌절될 위기에 처한다. 다들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지만 쉽지 않다. 제랄드는 마침내 빚쟁이들에 의해 집에 차압이 들어옴으로써 아내에게 모든 거짓말을 들키게 되고, 가즈는 아들을 아내에게 뺏긴다. 롬퍼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고... 하지만 할리우드 구성상 당연히 반전이 온다. 이전에 그들이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철강 스트리퍼'라는 식으로 신문 등에 남으로써 오히려 유명하게 되어 여자들이 그 스트립쇼를 보고 싶어하게 되자 술집 주인이 가즈에게 빨리 쇼를 올리자고 한다. 위기를 탈출하는 데 효과적인 극적 장치가 반전이다.
e. 절정-카타르시스의 지점
그 동안 쌓여 온 갈등들이 증폭되어 폭발하는 지점이 바로 절정이다. 작품에 따라 이 단계는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짧아도 너무 길어도 안 될 것이다.중요한 것은 절정이 강렬해야 하고,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확실하게 앞에서 보여진 위기를 극적으로 몰아가 극단으로 치닫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 택시 드라이버>에서 고독한 택시 운전사 트라비스가 사창굴에 들어가 포주와 민간 경비원을 처절한 총격전을 벌이며 싸죽이고 소녀 아이리스를 구하는 부분이야말로 영화에서 절정이 무언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장면이다. 스타일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파리 텍사스>에서도 주인공 트라비스가 핍쇼룸에서 거울을 사이에 두고 아내 제인과 재회하는 것도 뛰어난 절정의 한 장면이다.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절정의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다. 그 영화의 라스트는 갱들이 위장 경찰을 놓고 자기들끼리 다투다 서로가 서로를 릴레이식으로 동시에 총으로 쏘아 같이 죽는다. 갱들의 자기 파괴적인 심리를 풍자적으로 다룬 그 장면은 비록 홍콩 영화에서 응용한 장면이긴 하지만 홍콩 영화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잘 사용되었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는 맥머피가 병원 탈출 직전에 수간호사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그녀를 목졸라 죽이려는 게 이 작품의 절정이다. 그는 한밤중에 창녀들과 요란한 파티를 즐긴 후, 다음 날 아침 탈출하려다 환자중 말더듬이인 빌리 문제로 인해 탈출 직전에 수간호사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그녀의 목을 조르느라 탈출에 실패한다. 결국 영화 전반에서부터 계속 끌고 오던 맥머피와 수간호사의 팽팽한 대립 관계가 여기서 무너진다.
< 폴몬트>의 절정은 가즈가 다시 스트립 단원을 불러모아 쇼를 올리게 되는 부분이다. 술집은 그들의 쇼를 보고자 하는 여성 손님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남자 손님들까지 와 있을 정도가 된다. 마침내 참가를 거부하던 데이브도 아내의 성원에 힘입어 돌아오게 되어 분위기가 고조를 이룬다. 쇼를 하기 직전 주동자인 가즈가 남자 손님들 앞에선 못하겠다고 거부하지만 그건 라스트를 좀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마침내 스트립쇼가 시작되고 여성 관객들은 환호한다. 봅 호세의 뛰어난 뮤지컬 <재즈의 모든 것>(All that Jazz)에서 재즈 뮤지컬의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주인공 조 기디언(로이 샤이더)이 죽음 직전에 환상을 통해 마지막 무대는 뛰어나게 연출된다. 그것은 실제로 영화에서 절정이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정통 드라마트루기의 절정에선 심리적으로 일종의 카타르시스(정화) 효과가 있어야 한다. 가령 <편지>의 후반부에서 비디오를 통한 환유의 영상 편지는 일종의 절정인데, 그 장면에서는 철저히 눈물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의도하고 설정했다. 만약에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그 영화는 멜로 드라마로서 실패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절정에서의 그러한 카타르시스를 오히려 거부하고 거의 생략하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런 경우인데, 그 작품은 의도적으로 정통적인 드라마트루기에서 보여 주는 절정의 느낌을 주인공이 자신의 초상화 사진을 찍는 정도로 단순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스타일이다.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그런 비정상적인 절정을 싱겁게 생각하고 이게 뭐야 할 수 있지만 비평가 입장에서는 그런 초월성이 작품의 질을 높였다고 평가한다.
만약에 <8월의 크리스만스>에 <편지>처럼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위한 절정을 설정했다면 그 영화의 톤은 깨지고 실패작이 됐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편지>가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담담하게 결말이 지어졌다면 역시 실패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둘다 멜로 드라마이지만 하나는 드라마트루기가 중요되는 정통 드라마로서 이야기를 구축해 왔고, 다른 하나는 드라마보다는 분위기와 에피소드가 중요시되는 서정적인 멜로 드라마로서 끌어 왔기 때문에 그런 설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절정은 장르나 작품의 스타일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고다르 영화처럼 정통 드라마트루기를 거부한 영화들에서는 절정이 어디인가를 찾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f. 결말
이 지점에선 그 동안 맺혔던 갈등을 풀어 주고 서서히 마무리를 지어 주어야 한다. 절정에서 바로 마무리를 해주는 것보다 절정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을 그 동안 쌓아 온 복선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는게 좋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 동안 일어난 극적인 스토리 속에서 빠져 나갈 심리적인 여유를 주는게 좋다는 것이다. 때로는 일종의 반전에 의해 예기치 못한 결말을 주어 관객을 즐겁게 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역으로 작위적이나 억지 느낌을 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관객들을 위해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작위적이어선 곤란하다. 어떤 결말이든지 그 동안 진행되어 온 분위기에 걸맞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결말은 어떻게 되는가? 수간호사를 죽일 뻔한 맥머피는 붙잡혀 병원측이 자행한 전기 충격 요법에 의해 식물인간이 된다. 그러자 그 동안 맥머피로 인해 심리적으로 변화를 겪은 인디언 치프가 맥머피를 안락 안락사시키고는 그가 충고했던 대로 수도관 모체를 던져 창문을 깨뜨리고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데서 마무리된다. 병원에서 맥머피가 등장하는 데서 시작했다가 결국 그가 죽은 데서 영화가 끝나지만, 작가는 그의 대변인인 치프가 병원을 탈출하는 설정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희망을 주고자 했다.
< 폴 몬티>의 결말은 거의 절정과 동시에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막판에 참여를 거부했던 가즈가 아내와 따라온 아들의 권유로 쇼 중간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스트립쇼는 성공하고, 그들이 무대 위에서 옷을 완전히 벗어 던질 때 화면이 정지되며 영화는 끝난다.
구성이란 단순하게,도입,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식으로 배열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그런 배열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극적으로 짜임새 있게 해내느냐가 문제이다. 그러기 위해선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처럼 각각 인물들의 묘사가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치밀한 복선이나 반전, 아이러니 기법 등이 필요하다. 특히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전반적으로 코미디 장르를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스토리 전개에 큰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역시 코미디 장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폴 몬티>는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만큼 치밀하거나 심각하진 않지만 좀 더 쉽고 대중적(서민적)이다. 그리고 가볍지만 사회 현실의 한 단면을 건강하게 풍자한 영화로서 나름대로 큰 가치가 있다.
<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같은 작품은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아도 뛰어난 연출력이 받쳐 주지 못하면 완성도가 약해질 수 있지만 <폴 몬티>같은 작품은 웬만한 연출자면 충분히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만큼 시나리오의 힘이 컸다고 본다. 그리고 그 작품에선 사실상 절정과 결말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즉 절정에 이르는 어느 순간에서 끝냄으로써 결말을 대신한다. 그런 방식은 종종 할리우드적인 구성 방식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선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좀 더 인상적으로 남을 수 있었으니까. 때로는 이처럼 절정과 결말이 합쳐질 수 있고, 위기와 절정이 동시에 겹쳐질 수도 있으니 내용에 따라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3. 복합적 구성
< 시민케인>
거대한 부를 소유한 케인이라는 인물이 죽자, 한 방송사 기자는 케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로즈 버드'라는 말에 그의 삶의 비밀이 담겨 있을거라고 생각하고는 그 의미를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기자가 케인이 살아 생전에 가까웠던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게 되면서 회상이 시작된다. 케인의 후견인이었던 대처, 친구인 르랜드, 그의 충복 번스타인, 그의 두 번째 부인 수잔 등을 통해 케인이 어린 시절 평범한 하숙집의 아들에서부터 어떻게 신문사 등 거대한 부를 소유한 부자가 되어 막강한 파워를 가졌다가 나중에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되었나가 보여진다.
이 구성은 일종의 미스터리적인 설정을 기조로 한다. 즉 '로즈 버드'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추적하는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 모티브는 케인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사용되는 극적인 장치일 뿐이니까. 만약에 이 스토리가 서사적 스타일로 구성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큰 주제인 무한한 권력을 꿈꾸다 파멸하는 맥베스적인 인간을 다룬다는 의미는 전달할 수 있었지만, '로즈 버드'라는 극적인 모티브는 효용가치가 없어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한 인물에 대해 사람마다 달리 평가하고 바라볼 수 있다는 주제의 핵심 중 하나가 약화되었을 것이다.
< 대부>
속편치고 전편보다 나은 작품은 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나는 [대부2]를 보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보록 전편 [대부]에 비해 대중적 공감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그 이야기의 깊이는 훨씬 �어나다. 그 힘중 하나는 역시 전편의 직선적인 내레티브완 달리 회상 방식에 의한 복합적 구성에 있다. 평론가 존 헤스에 의하면, 코폴라는 [대부2]에서 관객의 단순한 몰입보다는 이화감을 창조하기 위해 비직선적인 내레티브를(일종의 변증법적인 구성을) 사용하여 그 자신이 제시한 미국 문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인 분석을 명확히 인식하도록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관객은 이화감보다는 또다른 차원으로의 몰입을 함으로써 인간과 사회구서의 본질에 대한 섬칫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 비토의 뒤를 이어 돈 콜레오네가 된 마이클의 회상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회상장면에선 아버지 비토가 시실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마피아의 보스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보여지고, 현실 장면에선 역으로 이미 거대하게 성장한 마피아 보스 마이클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각각 5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과거 아버지의 성장과 현재 아들의 몰락 시퀀스가 병행되면서 보여지고 있는데, 비교의 핵심은 어떻게 성공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왜 불가피하게 실패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라쇼몽>
어떤 평론가는 [라쇼'D]을 [시민 케인]의 일본판이라고도 얘기하는데, 그건 스토리보다는 구성적인 면에서의 유사함 때문이다. 구로사와감독은 숲속에서 일어난 살인과 강간에 대한 하나의 진실에 대해, 거기에 관련된 4인의 인물들이 각자 다르게 증언하는 상황을 회상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진실이란 그야말로 상대적이다.'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스토리에는 사실상 복합적 구성이 필수적이다. 즉 구성 자체가 주제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상 방식 구성을 한 작품들이 한 주인공의 시점에서만 보여지는데 반해 이 작품은 숲속에서 일어난 살인,강간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재구성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똑같은 장면을 사람마다 달리 회상을 통해 반복해서 보여 준다.
< 애니홀>
1977 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각본상을 수상한 우디 알렌의 [애니홀]은 주인공 앨비가 애니 홀이란 여자와 헤어지고 나서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마치 정신분석을 하듯이 과거를 돌아보는 식으로 구성된다. 이 작품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산딸기](Wild Strawberry)나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처럼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적 시각에서 회상 방식이 전개된다. 실제로 작품속에서 정신 분석을 받고 있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앨비는 자신의 어린 시절, 애니 홀을 만나기 전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 애니 홀을 만나 연애하게 된 시절, 그녀와 헤어지게 된 에피소드 등을 하나씩 회상한다.
그 복합적 구성은 이미 언급한 세 작품에 비해 다소 복잡하다. 과거속에서 또 다른 과거(대 과거)를 회상하거나 잉그리만 베르히만 식으로 현재와 과거가 한 화면 속에 공존하는 연극적인 회상 방식도 도입된다. 시간 연대순으로 회상되지 않고 주인공의 감정 리듬에 따라 시간 순서가 막 뒤바뀌기 일쑤다. 또한 회상을 시작하는 현재 시점은 처음과 끝에서만 보여지고 나머진 내레이션으로 대치되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진행되진 않는다. 대신 과것에서 또다른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오히려 병치되어 보여지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한 구성 방식은 어쩌면 앨비의 다소 산만한 정신 세계를 보여 주는 데는 무척 효과적인 것일지라도 모르지만 자칫하면 산만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복잡한 구성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오히려 신선한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애니홀]은 내용과 형식이 일치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저수지의 개들>
보석 상점을 털다가 경찰에 쫓겨 창고에 모인 일단의 갱들이 그들 사이에 경찰 프락치가 있다고 서로를 의심하다 내분이 일어나 거의 다 죽고 한 사람은 경찰에 잡힌다는 스토리다. 타란티노는 그 작품을 종래의 갱스터 무비와 다르게 구성했다. 가령 기존의 갱스터 무비는 대부분 직선적인 내레티브를 통해 스토리 중심으로 풀어 나갔지만, [저수지의 개들]은 철저히 정통 드라마트루기를 해체시켜 나간다. 어떻게 보면 [애니홀]과 유사하게 복잡한 회상 방식이긴 하지만, 좀 다른 것은 자막을 상용해 갱단들의 면면을 인물 중심으로 회상해 나간다는 것이다. 가령, 첫 장면에선 갱단들이 상점을 털기 전에 모여 식사하는 걸 보여 준 다음,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들이 이미 털고 나서 경찰에 쫓기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그들이 최초로 갱단의 강도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된 사연이 인물별 회상을 통해 드러난다. 내레티브는 주로 경찰에 쫓겨 창고에 모인 갱들이 누가 프락치냐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과 그들이 범죄단에 들게 된 에피스드, 그리고 그들이 보석가게를 털다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쫓기는 장면 등 세가지 이야기가 병행되어 서술된다. 기존 갱스터 무비 같으면 당연히 보석 가게를 터는 장면을 자세히 보여 줄 텐데, 타란티노는 그 장면을 과감히 생략해 버렸다. 오히려 범죄 이후 경찰과의 대립보다는 갱들끼리의 내부 대립을 핵심 갈등 요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발상이다. 회상 방식에 있어서도 연대기적인 순서를 무시하고 마치 채널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며 청취자가 원하는 곡을 듣는 방식으로 에피소드를 조합해 가고 있다.
실제로 [저수지의 개들]의 내레티브 전개 방식은, 타란티노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일당들의 모의가 실패로 돌아가는 내용을 뉴스 영화와 다큐멘타리를 차용해서 만든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1956)처럼 라디오 프로그램을 차용해서 구성한 영화이다. [저수지의 개들]은 갱스터 음악실이고, 개성 있는 다양한 다양한 색깔의 갱들은 마치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된 손님처럼 자기들의 무용담을 떠벌린다. 자유로운 토크쇼처럼 순서도 없다. 일정 시간 동안 부스(창고)안에서 그들의 보석 강도에 대한 이야기와 밀고자로 인해 경찰에 잡힐 뻔한 이야기를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에필로그는 확실하게 있다. 홍콩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훨씬 더 극적으로 표현된다. 지금까지의 살펴본 다섯 편의 영화 유형들은 복합적 구성 방식의 몇가지 대표적인 실례를 보여 준다.
그외에 대부분의 영화들은 위와 같은 구성 형식들의 변형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몇몇 작품은, 비록 그 바탕은 과거 복합적 구성의 재해석이긴 하지만, 구성 그 자체가 매우 독창적인 경우도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산다]가 그런 실례에 속한다.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도 재미있는 구성으로 언급할 만하다. 치밀하게 조립된 퍼즐 게임 같은 그 작품은 사건의 절름발이 용의자 킨트가 증언의 대가로 석방을 약속받고는 그 동안의 범죄 행각의 전모와 주범에 대해 고백하는데, 그 상황이 회상(플래시 백)을 통해 보여진다. 범죄 사건의 디테일들이 경찰서에서 증언하는 킨트의 상황과 병치되어 보여지다가 증언이 끝나 풀려난 킨트가 절름거리며 걷다가 갑자기 정상으로 걷는 다리 모습을 보여 주는데서 그가 주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를 취조한 경찰은 그 동안 그가 증언한 내용들이 모두 꾸며진 거짓 내용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를 뒤쫓는 데서 끝난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회상은 마치 [라쇼몽]의 회상처럼 진실이 아닌 일전까지만 해도 그 동안 보아 온 회상 장면을 리얼리티로서 받아들이다가 나중에 가서야 그 동안 보았던 것들이 모두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또 다른 독특한 복합적 구성의 실례는 아마 구로사와 아키라의 [산다](1952, 143분)라는 작품이 아닐까?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한 중년 공무원의 이야기를 다룬 그 작품은 내(이정국감독)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 스토리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주인공 와타니베가 시한부 병에 걸린 걸 알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방황하다가 한 젊은 여자와의 잠깐 동안의 만남을 통해 뭔가를 깨닫고 행동에 나서는 데까지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스토리 전개는 부분적인 회상을 빼곤 직선적인 내레티브 방식이다.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와타니베가 죽기 직전 어떤 일을 하다 죽었나를 자세히 보여 주지 않은 채 바로 주인공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의 구성 핵심은 여기서부터 진행된다. 즉 죽은 주인공의 영안실 앞에서 그의 주변 사람들(시청 동료, 시민 등)이 그가 죽기 직전의 행로(전반부에 생략했던)에 대해 하나씩 회상해 가는 복합적 구성에 의해 보여 준다. 즉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회상 방식 수법을 사용한 게 아니라 전반부만 직선적인 내레티브를 사용하고, 바로 몇 개월을 건너 뛴 다음 다시 그 건너 �었던 상황을 회상(플래시 백)을 통해 드러냄으러써 단순한 멜로 드라마를 뛰어넘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게끔 해준다. 후반부에서 보여 준 주인공 와타나베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은 마치 [시민케인]에서 케인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회고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 산다]의 그러한 구성 방식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를 표현하는 데 아주 적절했던 것 같다. 누벨 바그 영화 감독들의 정신적인 스승이라고 불리는 영화 이론가 앙드레 바쟁은 그 작품에 해한 감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구로사와의 [산다]를 보고 난 후에 나는 이 영화가 펼쳐 보여 준 풍부한 지적, 도덕적, 심미안적 세계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 영화는 내용뿐 아니라 시나리오에서도 비교할 수조차 없이 중요한 가치들을 용해시켜 놓았다.'
4. 에피소드식 구성
지나치게 기승전결식의 정통 드라마트루기에 얽매이지 않고 극적인 에피소디를 엮어서 구성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런 구성 방식은 할리우드 영화에선 금기시하곤 한다. 왜냐하면 관객의 감정을 이입시키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일정한 주제 아래 에피소드를 적절히 연결하는 구성 방식을 취한 영화들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 그런 영화들은 진지하게 작품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성은 떨어진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선 때론 여러 번 감상해야만이 그 내레티브를 정학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다소 복잡한 구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흥행에 성공한(크게는 아니지만) 경우도 있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이나 송능한 감독의 [넘버3](1997)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런 작품은 워낙 각각의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이 재미있어 관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끌어냈지만, 한편으론 직선적인 내레티브를 통한 할리우드적인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기도 했다.
로버트 알트만은 [숏 컷]과 [패션쇼]등의 작품을 통해 에피소드식 구성에 의한 영화 만들기에 성공한 감독이다. 특히 [숏 컷](Short Cuts, 1993, 188분)은 미국 L.A 교외의 한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백인 중산층들의 일상을 다양한 인물들의 에피소디를 통해 풍자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역시 그들 작품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도 일종의 에피소드식 구성에 의해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잘 그려낸 작품에 속한다. 대개 지적인 감독들은 전통적인 내레티브 방식보다 이런 식의 남다른 내레티브 방식을 선호하고 실제로 영화 애호가들 입장에서 색다른 맛을 주긴 한다. 당연히 대중들 입장에선 적응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작가나 감독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관객들인 영화 애호가들이니까.
에피소드 구성 중에 관심을 끄는 것은 [펄프픽션]이나 밀코 만체브스키의 [비포더 레인](Before the rain,1994,113분)처럼 순환적인 구조이다. 즉 영화의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마치 원형처럼 고리를 이루는 구성을 말한다. [펄프픽션]은 첫 신이 단역급에 해당하는 두 뜨내기 남녀강도가 카페에서 강도짓을 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되어 주인공들의 여러 상황들이 보여지며(주인공들 시각에서)그 뜨내기 강도들과 주인공들이 만나는 식으로 구성된다.
[ 비포 더 레인]의 경우도 처음과 끝이 똑같은 구조지만 [펄프픽션]과는 좀 차원이 다르다. 마케도니아가 주 배경인 그 작품은 각각 말, 얼굴, 사진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세 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졌는데, 도입부는 알바니아의 회교도 소녀 자미라가 들판을 가로 질러가 한 수도원에 숨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가족에게 쫓기던 그 소녀가 죽고, 공간은 과거의 영국 런던으로 옮겨져 사진 잡지 편집장 앤과 그녀의 애인인 사진 작가 알렉산더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스케티되다가 알렉산더가 자신의 고향인 마케도니아로 가자 이제 스토리는 다시 마케도니아의 기독교, 회교 간의 싸움 속으로 옮겨간다. 거기서 알렉산더는 자미라를 구하려다 자신은 죽고 자미라는 도망가 수도원으로 피신하는 첫 장면으로 다시 이어진다. 이러한 원형 구조는 '폭력의 무자비한 악순환'이라는 [비포 더 레인]의 주제를 표현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펄프픽션]과 [비포 더 레인]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그 형식의 독창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사실 그런 원형 구성의 원리는 이미 1946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악몽의 밤](Dead of Night, 102분)이란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알베르토 카발칸티를 비롯한 네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한 그 작품은 공포와 환타지가 섞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지닌 에피소드들로 이뤄져 있는데, 한 건축가가 별장 개축을 의뢰받고 별장에 도착하는 데서 시작된다. 건축가가 그 별장의 사람들로부터 다섯가지의 기괴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을 언젠가 보았고, 그들의 이야기들도 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중에 가면 그 모든 것이 꿈이나 환상처럼 애매모호하게 보여지고 그가 다시 전화를 받고 도입부와 똑같이 그 별장에 도착하는데서 끝난다. 1940년대에 어떻게 그런 과감한 구성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작품의 형식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나는 그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요즘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과거에 있었던 영화들의 변형이거나 재해석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5. 수필적 구성
프랑스 누벨 바그 감독들 이전만 해도 영화는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구성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다르, 뜨뤼포, 알랑 레네 등과 같은 감독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영화에 있어서 구성이 다양해졌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감독들은 유행처럼 기존의 정통 드라마트루기 방식을 거부하곤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감독들이 다시 전통적인 내레티브 방식으로 회귀하긴 했지만 고다르만은 여전히 자기 스타일을 고집했다.
그의 스토리 전개 방식은 마치 수필을 쓰듯이 자유롭다. 종래의 내레티브 전개처럼 기승전결이 없이 감독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의 첫 작품[네 멋대로 해라]는 그나마 최소한의 기존 내레티브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 만들어진 [여자는 여자다], [미치광이 피에로]등과 1970년대 이후 작품들은 영화광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전통적인 내레티브 전달 방식을 무시하고 있다. 고다르 이후 많은 영화학도들이 그의 흉내를 내려고 했으나 대부분 실패하곤 했다. 사실 수필식의 내레티브 전개방식은 시나리오 초심자들에겐 극히 위험하다. 자칫하면 자아도취나 관념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더라도 전통적인 내레티브 구성 방식에 대한 기본기는 되어 있어야 나름대로 중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나마 수필식의 내레티브 구성에 성공한 현대 감독은 왕가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아비장전]이나 [중경삼림]같은 작품은 부분적으론 에피소드적인 구성을 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수필을 쓰듯이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왕가위의 그런 영화도 자세히 보면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 다큐멘타리 구성
이란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같은 작품은 어떤 구성일까? 마치 다큐멘타리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리얼하게 한 소년의 모습을 그린 그 작품은 확실히 할리우드적인 드라마 구조완 달라 보인다. 극적인 설정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아주 담담한 방식으로 주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 작품조차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기본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전통적인 극적 구성이나 관객의 공감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타리적으로 스토리를 풀어 나가는 작품은 의외로 많다.
에밀 꾸스트라차의 [집시의 시간]이나 올리버 스톤의 [JFK],[내처럴 본 킬러스], 코스타 가브라스의 [계엄령, [Z], 우디 알렌의 [돈을 갖고 튀어라], [부부일기],[젤라스], 그리고 스콜세지의 대부분 작품들이 그런 구성 방식을 사용하는 예에 속한다. 이 스타일은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조작된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느낌을 보다 강하게 반영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똑같은 대상을 어떤 구성 방식으로 접근하는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스콜세지 영화와 코폴라 영화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마피아 세계에 대한 두 사람의 접근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대부]와 [좋은 친구들]을 비교해 보자. 코폴라의 [대부]는 직선적인 내레티브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주관적인 시각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를 폭로하지만 마피아가 상당히 미화되고 있는 반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은 다큐멘타리적인 극적 구성을 통해 마피아의 일상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부]는 철저히 관객의 동일화를 유도하는 반면 [좋은 친구들]은 기승전결식의 치밀한 짜임새를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보다는 주로 인물의 행동을 다큐멘타리 찍듯이 뒤쫓아 가면서 찍어 긴장을 만들어 낸다.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1975), [카지노]등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스콜세지는 자신의 영화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을 [대부]시리즈와 비교해 '내 영화는 코폴라 영화와 비교한다면 거리의 다큐멘타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같은 구성은 같은 권투 소재 영화 [록키]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대중들에겐 확실히 [록키]처럼 전형적인 정통 드라마트루기 식으로 만든 작품이 재미있겠지만, 작품의 치열한 깊이나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있어선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성난황소]는 권투 선수에 대한 상투적인 영웅주의 관점이나 묘사에서 벗어나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조작하지 않고 아주 진실하게 접근한 점에서 [록키]에 비해 훨씬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대만의 후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도 스콜세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다큐멘타리적인 스타일이다 .특히 [동년왕사], [동동의 여름방학], [팽퀴섬에서 온 소년]등을 보면 기존의 드라마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주의적인 느낌으로 마치 삶을 관조하듯이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장이모우 영화 중에서 뛰어난 형식을 보여 준 [귀주 이야기]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비록 드라마적인 구성을 하긴 했지만 마치 '귀주'라는 한 농촌 여인에 대한 세미 다큐멘타리를 보는 느낌이다. 그런 작품들은 정통 드라마트루기에서 강조하는 위기나 절정에 대해 그다지 강박관념을 갖지 않고 구성한다. 그런 구성 방식에서 중요한 핵심은 얼마나 진실과 리얼리티를 객관적으로 잘 표현해 내느냐에 있다.
7. 신화적인 구성에 대하여
정통 드라마트루기에는 스토리를 풀어가는 몇가지 구성 방식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신화적인 구성인데, 대개 서부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가령 조지 스티븐스의 [셰인]이나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같은 서부 영화에서 불의가 판을 치는 마을에 정의의 총잡이(들)가 등장하여 악당들을 물리쳐 정의를 이룬 다음 그곳을 떠난다는 식의 구조처럼 말이다. 신화적인 구성의 원리는 일정한 공간에 한 영웅이 등장하여 그곳을 변화시킨 다음 떠난다는 구성이다. 그것은 꼭 서부영화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머피가 정신병원에 들어와 억압적인 시스템 하에 있는 환자들 편에 서서 병원측과 대항하다 일부 환자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후 죽음으로써 병원을 떠난다는 구성도 마치 서부 영화처럼 일종의 신화적인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한 신화적인 구성 원리의 핵심은 '도입부에 영웅이 일정한 공간에 등장했다가 마지막에 떠난다'는 것과 '영웅에 의한 변화'이다. 그 변화란 정의 실현, 진실 캐기, 교훈적인 행동, 진리에 대한 자각 등이다. 그 원리를 따르려면 일정하게 한정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져야 하고, 그 공간은 영웅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불의나 모순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웅을 등장시켜 그곳에서 불의와 모순을 타파하고 정의를 이룸과 동시에 억압받던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런 후 반드시 그 영웅은 어떤 형식으로든 그 공간을 떠나도록 한다. 그런 신화적인 구성은 존 포드나 구로사와 아키라 등과 같은 감독에 의해 무척 애용되었다. 특히 구로사와는 사무라이 영화의 걸작들인 [칠인의 사무라이]나 [요진보], [쓰바키 산주로] 같은 영화에서 그런 신화적인 구성을 통해 영웅(들)을 묘사하고 있다.
신화적인 구성은 과거 서부 영화에서 전형화된 틀로 사용된 후, 현재까지도 다양하게 변형되어 자주 사용되어 왔다. 키팅 선생이 억압적인 공립학교에 부임해 와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친 후 떠나는 스토리를 다룬 피터 웨어의 [죽은 시인의 사회], 지구에 식물 채집을 하러 왔다가 소년과 우정을 나누고는 다시 떠나는 외계인을 다룬 스필버그의 [E.T], 옛 친구 집에 왔다가 친구의 아내를 차지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비디오 테이프], 아내를 만나기 위해 최첨단 빌딩에 들어갔다가 테러범들과 싸워 수많은 인질들의 목숨을 구하고 빌딩을 나서는 경찰을 다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이하드]등이 모두 그런 신화적인 구성 방식의 원리를 취하고 있다. 그 외에 알트만의 [M.A.S.H], 존 슐레진저의 [미드나잇 카우보이],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장 자크 아노의 [장미의 이름]등도 그런 예에 속한다.
직선적인 내레티브 구성에서 신화적인 방식이 자주 이용되는 것은 그만큼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구성 틀은 사람들에게 본성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마치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나(태어나) 많은 변화와 갈등을 겪다가 다시 떠나는(죽는)것과 같은 원초적인 구성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8. 스릴러와 미스터리적 구성
정통 드라무트루기를 가진 할리우드 영화에선 신화적인 구성 외에도 극적인 재미를 위해 스릴러적인 구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정통적인 드라마트루기 구성방식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구서을 하고 있는,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에서 관객들은 영화 초반부터 상어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감을 느끼며 영화를 본다. 만약 도입부에 한 여대생이 밤바다에 수영하러 들어갔다가 죠스에게 잡아먹히는 끔직한 장면을 배치하지 않고, 바로 시작하였다면 극적 긴장의 강도는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상어에 대한 공포는 실제보다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함으로 더 크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은 헨리 제임스의 공포소설 <나사의 회전>서문에 나오는 '독자들에게 악에 대한 비전을 강화시키는 방법은 독자 스스로가 자신의 경험, 상상력, 동정, 공포등에 비추어 악마를 생각해 내도록 만드는 것이다'라는 조언에 따른 것이다. 스필버그는 초반 바다 장면에서 죠스의 악마성을 직접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배치함으로써, 이후에 관객들이 바다를 더 이상 낭만적인 대상이 아닌 공포의 대상으로 느끼도록 만들었다.
스필버그의 상업 영화는 대부분 영화 초반에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조적인 성격을 띤 극적인 사건을 배치하는 구성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런 원리는 주로 히치콕에 의해 자주 사용된 서스펜스 구성 방식이다. 히치콕은 서스펜스와 미스터리의 구성 차이를 사전에 정보를 주느냐 안 주느냐에 구분한다. 즉 서스펜스는 사전에 살인자에 대한 사전 정보를 주고 그가 어떻게 잡힐 것인가, 또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을까에 대해 긴장하게끔 하는 것이고, 미스터리는 살인자에 대해 사전 정보를 주지 않아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가령 그의 작품 [프렌지]에서는 도입부에서 넥타이로 살해당한 여자가 강가에서 발견되는 게 보여지고, 다음 장면에서 바로 똑같은 무늬의 넥타이를 매는 주인공을 보여 준다. 관객들은 그가 살인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지만 잠시 후면 그의 친구가 진짜 살인범이고 주인공은 무고하게 누명을 쓰게 될 거라는 걸 보여 주고 스토리를 전개한다. 초반에 정보를 제공받은 관객들은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광적인 살인범이 다른 여자들에게 접근할 때마다 또 살인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고, 주인공이 경찰에 쫓길 때는 그가 빨리 누명을 벗길 바라면서 본다.
[ 밧줄](Rope)이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동성애 관계인 두 대학생이 다른 친구를 밧줄로 목졸라 죽여 상자 속에 넣은 것을 보여 준 후, 바로 등장한 파티의 손님들을 상대하는 그들 두 살인자를 보여 준다. 관객들이 언제 그 상자 속의 시체가 발견될 것인가를 긴장하며 바라보게끔 영화 전반이 구성되어 있다.
몇 년 전 극장에서 [양들의 침묵]을 보았을 때, 그 도입부에서 여자 FBI 요원인 스탈링(조드 포스터)이 식인 살인자 렉터 박사를 만나러 감옥에 갈 때 마음 졸이고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에 그 장면 바로 전에 스탈링의 상관에 의해 렉터 박사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살인자인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않았다면 그런 서스펜스가 느껴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영화 후반에서도 스탈링이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의 집에 들어섰을 때, 어둠 속에서 야간 투시경을 쓴 살인자가 그녀를 뒤에서 공격하려고 하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고 주인공은 모르기에 훨씬 긴장 강도가 커졌다. 이런 서스펜스 스릴러의 원리는 사전에 정보를 주느냐 안 주느냐에 달려 있다.
서스펜스 스릴러는 종종 미스터리와 혼합되어 사용된다. 가령 [양들의 침묵]은 연쇄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로 시작해 나중에 범인이 소개되고 나면 그 범인이 어떻게 잡힐 것인가에 대한 서스펜스로 전환된다.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도 마찬가지다. 과연 영화사 간부인 그리핀 밀의 협박범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를 주조로 깔고, 다른 한편으론 우발적인 실수로 작가를 살해하게 된 그리핀 밀이 경찰에게 잡힐지도 모른다는 긴장 상황이 지속된다. 주의할 것은 진지하고 리얼리즘 스타일의 스토리를 지나치게 서스펜스 스릴러적인 장르로 포장하면 그 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제에 따라 구성 방식을 적절히 잘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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