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방

[스크랩] 그가 움직이면 모두 詩가 되었다

시인답게 2006. 4. 1. 23:47
 

그가 움직이면 모두 시가 되었다.

빠블로 네루다

애덤 펜스타인 지음|김현균·최권행 옮김|생각의나무|704쪽|25000원

 




네루다는 20세기가 인류에게 제안한 모든 열망의 계곡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답파한 시인이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이든 에로티시즘이든, 빙벽을 오르는 네루다의 손에는 시(詩)라는 피켈이 단단하게 쥐어져 있었다.


이 책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칠레 시인 네루다(1904~1973)의 평전이다.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72년 지병인 암이 악화되자 파리 주재 대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했다. 자신이 열렬히 지지했던 아옌데 정권이 귀국 이듬해(1973)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지자 마치 운명을 같이하듯 네루다 역시 쿠데타 12일만인 9월23일 산타마리아 병원에서 69세로 사망했다.



‘내가 죽더라도, 나보다 오래, 넘치는 맑은 힘으로 살아남아/ 창백한 자 시들한 자들의 마음을 격정으로 끓게 하라.’



네루다는 20세기에 가장 많이 읽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 저작인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는 1960년대 이미 100만부 이상 발행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세상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 책에는 연대기적으로 기술된 네루다의 모습이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문장은 드라이하다. 책의 저자 애덤 펜스타인은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이자 스페인 일간지의 런던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기자이다.



테무코의 자연 속에서 네루다가 시인의 꿈을 키우던 유년기, 보헤미안적 삶에 탐닉했던 학창시절, 외교관으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을 섭렵하던 시절, 그리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망명길에 올랐던 시절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이 책은 이슬라 네그라에서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파란만장했던 네루다의 삶을 숨가쁘게 뒤쫓는다. ‘인간은 한 조각 소금처럼 대양으로 녹아든다’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우리는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네루다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에로티시즘, 초현실주의적 직관, 투철한 역사의식, 동양적 에스프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상상력은 한계를 몰랐다. 그의 말처럼 자신의 삶은 ‘모든 삶들로 이루어진 삶’이었으며, 그의 노래는 ‘모두의 노래’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네루다는 모든 언어를 통틀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고 말했고,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네루다는 언어의 미다스 왕이다. 그가 손을 대면 모든 것은 시가 되었다.”고 찬사를 바치고 있다.



네루다가 교유했던 사람들은 그 이름만 열거해도 20세기의 영광된 자리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자리까지를, 그리고 문화예술사는 물론이고 정치사를 포함한 가장 굴곡진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가르시아 로르카, 사르트르, 미스트랄, 보르헤스, 엘뤼아르, 아라공, 아스투리아스, 파스, 피카소, 디에고 리베라…. 그리고 정치적 인물로는 체 게바라, 마오쩌둥, 카스트로, 스탈린, 히틀러, 프랑코, 트로츠키, 아옌데 등이 네루다의 삶에 ‘조연’으로 출연한다.



문학을 떠난 네루다의 사생활은 모순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보헤미안 아나키스트로 시작된 그의 정치적 행로는 열성적 스탈린주의자를 거쳤고, 나중에는 ‘프라하의 봄’에 대한 환멸로 드러난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수많은 여자를 만났다. 청년기에는 두 여성에게 동시에 구혼했다가 모두에게 거절 당한 적도 있다. 네루다의 시는 상당수 여성에게 바치는 것들이었다. “내가 쓴 시를 다 합하면 아마 칠천여 쪽쯤 될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정치를 주제로 쓴 것은 네 쪽도 채 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사랑을 더 자주 노래한다.”



이 평전에 드러난 네루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모든 종류의 열정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詩人의詩
글쓴이 : 시詩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