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시

틈 (스승 임영조 시인)

시인답게 2006. 2. 26. 20:31


                 임 영 조

그가 넌짓 말을 던진다
나도 조심조심 말을 섞는다
절대로 틈을 보이지 말자!
해도, 어느새 벌어지는 틈
그 틈을 비집고 그가 쳐들어온다
간질간질 눙치듯 쉬슬어놓고
내 속을 갉아먹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역한 소문만 퍼뜨리는 쉬파리!

그를 보려는 내 눈과
그를 들으려는 내 귀와
그를 맡으려는 내 코와
그를 삼키려는 내 입이 곧
그가 비집고 쳐들어 올 구멍이라니!
그게 바로 내 생의 틈이었다니!

진도 앞 큰 바다도 절로 갈라져
틈을 보이일때가 있다지? 감춰둔
속내를 드러내고 사람을 끈다지?
금간 보도블록 사이로 촉을 내민
풀씨가 더 눈물겹고 환하듯
틈으로 엿본 생은 얼마나 인간적일까?

말의 틈은 흠이라지만
사람의 틈은 그의 생을 정독할
자상한 각주같은 것이니
더러는 틈을 보이며 살 일이다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열듯이
안으로 들이려면 틈을 내줄 일이다


* 제 스승이신 임영조 시인님의 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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