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스크랩] 이외수, 글과 그림

시인답게 2006. 7. 29. 13:36
내 용 :
이외수님 글과 그림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을 감싸안으며
나즈막히
그대 이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이제야 마음을 다 비운 줄 알았더니


수양버들 머리 풀고 달려오는 초여름


아직도 초록색 피 한 방울로 남아 있는


그대 이름...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막연하게 기다렸어요..

서산머리 지는 해 바라보면
까닭없이 가슴만 미어졌어요..

돌아보면 인생은 겨우 한나절..
아침에 복사꽃 눈부시던 사랑도
저녁에 놀빛으로 저물어 간다고..

어릴 때부터
예감이 먼저 와서 가르쳐 주었어요.


그대는 오지 않았다...

사랑이 깊을수록 상처도 깊어

그리움 짙푸른 여름 한나절

눈부시게 표백되는 시간을 가로질러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음악으로
멀어지는 강물소리...



허송세월
발목 잡는 세속에 등 돌리고
세필에 맑은 먹물
가느다란 선 하나로 산을 그렸다.

이런 날 그대는
어찌 지내시는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내가 그린 산에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거기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해는 이마를 지우며
어느새 등성이를 넘고 있다.

온 세상 푸르던 젊은 날에는
가난에 사랑도 박탈당하고
역마살로 한 세상 떠돌았지요.

걸음마다 그리운 이름들이 떠올라서
하늘을 쳐다보면 눈시울이 젖었지요.

생각하면 부질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알 수 있지요.

그리운 이름들은 모두 구름 걸린 언덕에서
키 큰 미루나무로 살아갑니다.

바람이 불면 들리시나요.
그대 이름 나지막히 부르는 소리...

가을밤 산사 대웅전 위에 보름달 떠오른다.
소슬한 바람 한 자락에도 풍경소리 맑아라...

때로는 달빛 속에서 속절없이 낙엽도 흩날리고
때로는 달빛 속에서 속절없이 부처도 흩날린다.

삼라만상이 절로 아름답거늘
다시 무슨 깨우침에 고개를 돌리랴.

밤이면 처마 밑에 숨어서
큰 스님 법문을 도둑질하던 저 물고기
지금은 보름달 속에 들어앉아 적멸을 보고 있다.




출처 : 부처님이 들어 보이실 연꽃
글쓴이 : par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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