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처녀시집『농무(農舞)』이후 일관되게 소외된 자들의 삶의 비애를 민요가락에 띄우고 있는 신경림. 그의 문학과 정신은 '예술'이니 '난해시'니 하는 기성문단과는 처음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보적인 사이클을 형성해 나간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는 고급의 예술성보다는 이념의 위의를 드러냈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민요조의 설핏한 가락들을 시의 질로 빚어냈다. 어쩌면 한국의 민중시는 신경림이 있어 그 개화와 결실이 가능했다고 평가받을 만큼 그는 한국시의 지형도를 완벽하게 바꿔낸 시인이다. 안도현 말에 의하면 그런 시인에게 대표작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로 시작되는『파장(罷場)』이라고 대답했다 한다. 혹은『농무(農舞)』, 혹은『갈대』등을 꼽는 분도 있지만 나는『목계장터』가 좋다. 두어 단어 빼놓고는 철저히 쓰인 우리말의 아름다움, 그 유려한 민요가락,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 등에 반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와 같은 떠돌이 장돌뱅이의 삶의 비애가 목울대를 치고 올라올 정도로 조형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이 콱 막힐 정도로 메어오는 이 서러움은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에 와서 절정을 이루는데 나는 여길 읊조리다가 땅에 고개를 처박고 쓴 물을 토하도록 운 적이 있다. 석삼 년(9년) 만에 한 이레쯤인지, 아니면 석삼년에다 한 이레를 더한 날짜 만큼인지 몰라도 하여간 너무도 괴롭고 쓸쓸해서는 천치로 변해버리고 싶은 마음, 천치로 변해서 등이 휘는 삶의 고단한 짐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 아니 그대로 영영 천치로 살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삶의 고통을 표현한 동서고금의 많은 명문장이 있다. 나도 "내 서른까지의 삶을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다"고 표현하여 그 고통의 강도를 드러내려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버리고 싶다는 말보다 더한 표현이 어디에 있겠는가. 떠돌이 장돌뱅이인 만큼 염량 세태와 무정한 인심조차 너무도 잘 알 터인즉, 오죽하면 석 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버리고 싶겠는가. * |
출처 : 시 연인이고 싶다.
글쓴이 : 정영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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