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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월 / 나희덕

시인답게 2007. 10. 25. 21:35

 

 

사진<김호선>님의 플래닛에서

 

/ 나희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山門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토리, 청설모, 노란 풀꽃뿐이어서

당신 이름뿐이어서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96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詩" (現代文學) 에서>

 

출처 : 자크 라캉의 거울
글쓴이 : 자크 라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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