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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너를 기다리는 동안 /黃芝雨

시인답게 2007. 10. 25. 21:37

   

     사진<사랑을 먹고사는 사람들>님의 카페에서

 

 

    를 기다리는 동안  黃芝雨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인. 전남 해남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의 입선과 <문학과 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83년에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간행하고 그 해 제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제2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제3 시집 <나는 너다>, 제4 시집 <게눈 속의 연꽃>을 냈다. 황지우의 작품들은 대체로 회화적이면서도 감각적 이미지들이 현실의 상황을 아파하는 시인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몇년 전 강은교 시인이 시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직접 고른 시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책이 출판된 적이 있다. 이 책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 관한 내용이다.

 

 

 

            

 

이 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착상이 떠올랐는지요? 그 동기는 무엇이었는지요?  구체적으로 답해주십시오.

 

 이 시는 1986년 11월 어느 날 중앙일보 사옥 내 계간 <문예중앙>에 속한 한 빈 책상 위에서 씌어졌습니다. 그 당시 나는 건국대 사태 이후 5공의 탄압 국면이 날로 극성을 부리던 때 어떤 일 때문에 지명수배되어 이른바 ‘도바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낮에는 주로 안전지대인 신문사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잡지사 잡글도 쓰고 하면서 노닥거렸죠.

그런데 하루는 그 신문사에 딸린, 무슨 하이틴 잡지에 근무하는 선배 시인이 <문예중앙> 부서를 지나가다가 문득 나를 발견하고는 “이봐, 황시인! 시 하나 줘. 하이틴이야. 쉽고 간단하게 하나 얼른 긁어줘!”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5분 걸렸을까요, 쓰윽 긁어서 줬습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습니다.

독자를 경멸하면서 함부로 써버린, 이 무시받고 망각된 시를 내가 다시 의식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뒤 이듬해 봄이었습니다. 친구 부인이 모 대학가 앞에서 그 당시 불온시 되던 사회과학 서점을 하고 있었는데, 그 뭣이냐, 너를 기단린다나 어쩐대나 하는 시가 어느 시집에 있느냐고 물어오는 거겼어요.

그게 성우 출신 김세원 씨가 어느 FM 방송에서 낭송한 뒤로 여러 사람이 와서 찾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핏 수치심 같은 걸 느꼈습니다.

2001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그해 8월 서울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있던 날 아침, 차를 몰고 학교로 가다가 나는 한 FM 라디오에서 50년 동안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기다려야만 했던 우리 역사의 슬픈 객들을 위해 이 시가 음송되는 걸 우연히 들었습니다.

이 매우 객관적인 매체에 의해 들려지는 내 시가 내 귀에 아주 낯설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이 시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출처 :시에 전화하기 )

출처 : 자크 라캉의 거울
글쓴이 : 심은섭<굴뚝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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