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에 마음이 먼지 같아서 홀로 작업실에 앉아 있습니다.
어제 영화사에서 배우들과 리허설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망설이다가 받았보니, 아들녀석이었습니다.
강남역으로 교통 근무를 나왔다고 선임의 전번이라 하더군요.
제 영화사도 강남역인데 채 5분도 안되는 거리에서 아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니...,
멍하더군요.
대충 감독에게 맡기고 나갔더니만, 5시에 한 시간동안 저녁식사 시간이라고 하기에
한참을 기다리다가 선임과 함께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부랴부랴 먹이고 나서
두 아들 녀석 용도 좀 주고 다시 밤 10시까지 근무를 서야한다기에 발길을 돌리는데,
매일 다니는 분당 집으로 오는 길을 어찌나 헤맸던지.
녀석 그냥 해병대 현역으로 가서 호연지기나 좀 길러 오라 했더니만...,
한편으로는 측은하고 한편으로는 가까이 있어 다행이라고 마음에 해일이 일더군요.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더군요.
오늘 오후 교대역 법원 앞으로 변호사 미팅을 가는데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는 순간,
뒷모습이 낮설지 않은 의경 모습에 매니저에게 차를 세우라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순간, '아부지'하고 달려 오는 아들 녀석이 덥썩 품에 안기면서 선임 눈치를 보는데
거 참, 열혈 청년 마음이 무너지더군요.
선임도 어제 그 A상경이었고, 잠시 기다리다가 도너츠에 핫 쵸코 한잔 마시는데,
교통사고가 났다는 무전에 선임과 함께 먹던 음식을 놓고 달려 가더군요.
눈물을 그렁이며 돌아보던 뒷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아빠 사랑해요. 라며 달려 가던 뒷 모습에 아직도 마음이 먼지 같습니다.
오랫동안 제가 큰 아들녀석과 같이 시간을 함께 한 탓인가 봅니다.
하버드에 간다는 작은 아들녀석 때문에 7여년을 떨어져 살고 있었기에
저를 닮아 눈물이 많고 마음이 여린 큰 아들 녀석과 정이 깊어졌나 봅니다.
오늘 같은 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예쁜 여친과 그리운 친구들이 많이도 그리울 나이인데,
제가 좀 강하게 키우려고 입대 지원을 시켰거든요.
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강남의 곳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우리 아들들이 왜이리도 눈에 자주 띠는지...,
밤 늦게 지리산 종주를 떠나려다가 그만 아들 녀석 때문에 주저 앉았습니다.
다행이 밴에 온장고가 있어 아예 우리 매니저 실장한테 뜨거운 커피를 가득
채워 놓으라 일렀습니다.
추운 겨울, 강남쪽에서 근무하는 우리네 아들들에게 나누어 줄 작정입니다.
이제 저도 자리에서 일어나 크리스마스 이브의 강남 거리를 홀로 걷다가
문득 그리움 이는 친구와 가볍게 한잔 하면서 제 아버지를 추억 해 보려 합니다.
지척의 거리에서 매연과 소음 그리고 추운 날씨와 싸우며 근무를 서고 있는데,
저 먼저 따뜻한 집으로 가기가 너무도 죄스러울 것 같습니다.
우리 김민우 이경에게 저는 어떤 아버지로서의 자화상일까요?
누군가 그리운 이에게 내 먼저 전화를 걸어 그립다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우리 아들들 성탄의 축복이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부모님들께서도 신의 은총과 가호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버지의 아들도 언젠가는 제 아들의 아버지가 되겠지요.
훗날, 아버지로서 아름답게 흑백필름에 담겨지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땅의 전의경 아들들.
09년 12월 24일 白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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