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께
내일이 5월 28일, 선배님의 8주기입니다만 올해도 선배님의 묘소에도, 시비가 세워져 있는 보령에도 가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어제 보령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배님을 포함해 보령이 낳은 문인 4인(이문구, 이문희, 최상규)을 기리는 문학관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는 내용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추진되기를 기원합니다.
2003년 5월 28일, 회갑을 몇 개월 앞두고 있을 때였지요. 췌장암으로 별세하신 그날의 화창했던 날씨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8주기 추모도 선배님을 소개하는 몇 편의 글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늘 미욱한 이 후배, 저승에서라도 많이 꾸짖어주시길 바랍니다.
* 시인 소개
1943년 10월 19일, 충남 보령시에서 태어나, 중2 때 지리교사로 부임한 신동엽 선생으로부터 글 잘 쓰고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총애를 받으며 사춘기적 감상으로 문학을 동경하였다. 이후 서울 대동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지만 당시 사실상의 보호자였던 외숙이 실직, 서울전신전화건설국 토목공사장 급사로 일하며 5년 만에 학교를 마치는 와중에서도 서울로 온 신동엽 선생의 지도로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5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서정주・박목월・김구용・김수영・이형기・함동선・김동리・손소희 선생 등 한국문단의 거장들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을 받았고, 소설가 이동하, 시인 김형영・마종하, 드라마작가 나연숙, 만화가 강철수 등을 동기로 만났다.
1969년 육군본부 통신대대에서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 후 동아일보 출판부에 일자리를 얻었으나 곧 사직하고 대전 근교의 비례사로 들어가 6개월 동안 30여 편의 시를 습작, 1970년 가을, 『월간문학』제6회 신인상에 시 「출항」이,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목수의 노래」가 당선되었다. 1975년 이인해・임홍재・정대구 등과 ‘肉聲同人’을 결성하여 사화집을 2집까지 펴내다가 임홍재의 급서로 중단, 그 후 10년 가까이 절필한 대신 미처 읽지 못한 시집과 문학서를 나름대로 체계를 세워 왕성하게 섭렵했다.
1985년 『한국문학』으로부터 등단 후 처음으로 ‘시 원고청탁서’를 받고, 가을에 고려원에서 첫 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를 출간했으며, 『한국문학』 1990년 3월호에 발표한 시 「환절기」로 제1회 서라벌문학상을, 1983년에는 세 번째 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로 제38회 현대문학상을, 1994년 시 「고도(孤島)를 위하여」 외 10편으로 제9회 소월시문학상을, 타계 후 문학사상사 제정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하였다.
199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출강을 시작으로,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서울시립대 시민대학 문예창작과, 고려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등에서 시창작 실기지도를 하였다. 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그림자를 지우며』『갈대는 배후가 없다』『귀로 웃는 집』『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시인의 모자』과 수상시집 『고도를 위하여』, 시선집 『흔들리는 보리밭』 등을 출간했다.
사후 1주기 때 추모문집 『귀로 웃는 시인 임영조』가, 5주기 때 시전집 『그대에게 가는 길』1, 2가 간행되었다.
* 아래는 추모 문집에 실린 필자의 편지
임영조 선배님!
선배님이 세상을 버리신 지도 10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저승세계에서는 몸과 마음이 다 평안하십니까?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린 말년의 모습이 떠오르고, 뒤이어 선배님과 함께 했던 적지 않은 시간이 떠올라 희비가 교차됩니다. 선배님은 육신의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가셨지만 넋은 여전히 시를 짓기 위해 고뇌하고 계시겠지요.
음주를 곁들인 사당동에서의 나날은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오세영 선생님을 좌장으로 모시고 일당이 모이면 임 선배님은 늘 분위기 메이커로 나섰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문단 이야기, 시와 시인 이야기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선배님은 참 구수한 말솜씨로 우리 모두를 즐겁게 했습니다.
선배님은 귀가 좀 어두워서 자기 주장에 치우친 말씀도 했었고 간혹 좌충우돌하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었지만 제게는 늘 신선하기만 했습니다. 미당 선생님에 얽힌 일화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기만 했었지요. 아니, 선배님의 말씀은 재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시인을 푸대접하는 이 땅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역설하였고, 그 말씀은 지금 생각해도 제 마음을 반듯하게 펴줍니다. 꼬장꼬장한 선비기질을 선배님처럼 완벽하게 지니고 계신 분을 저는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당은 사당동에서 출판기념회 등을 빙자하여 두세 달에 한 번씩 모였습니다. 남원추어탕이나 향원복집에서 소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피카소나 에뚜아르에서 맥주를 마셨지요. 간혹 노래방에 들를 때면 문단 최고의 음치라는 선배님의 노래를 듣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이제는 그 노래가 그립기만 합니다. 일당은 주로 김명인・이숭원・박주택・이재무・이승하였고, 김강태・고형진・송희복・홍용희도 자주 어울린 멤버였습니다. 아, 안정옥・김지헌・허혜정・정채원 씨도 선배님을 흠모하여(?) 잘 따른 문단의 후배들이었지요.
선배님을 땅에 묻고 온 날, 49제 뒤의 추모의 날에 모여 선배님이 안 계신 이 세상의 허전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모두 안타까워했었지요. 나이에 관계없이 선배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고, 격려해주었고, 때로는 무딘 우리의 펜에 대해 따끔하게 충고해주셨습니다. 선배님이 안 계신 사당동이며 우리 시단, 그리고 한국시인협회의 자리가 너무 넓어 허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말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가 날이 지날수록 더 많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책을 한 권 묶어 선배님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듣기로 했습니다. 1주기에 맞춰 책을 내려 하는데 하늘나라에서 그런 책 왜 내느냐고 역정을 내지는 마십시오. 선배님에 대해 쓴 여러 사람의 인물론과 추모의 글을 모았습니다. 선배님이 여러 지면에 쓰셨던 체험적 시론과 수필은 인간적 체취가 물씬 풍겨 가슴을 훈훈하게 합니다. 사모님께서 선배님의 체취가 담긴 글을 한 편 한 편 모아주셨고, 이재무 형이 출판 쪽 일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천년의 시작’ 김태석 사장님이 흔쾌히 책을 내주겠다고 하여 감격스러웠습니다.
선배님, 책이 출간되면 조촐한 모임을 한 번 가질까 합니다. 그리고 몇 년 있다가 시 전집이나 선집을 내어 또 ‘임영조 시인을 그리워하는 모임’을 갖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실 거지요?
임영조 선배님!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오늘따라 더욱 뵙고 싶습니다. 제가 선배님을 가깝게 뵌 것은 선배님이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이 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저 보고 간사가 되어 심부름을 해달라고 청하시기에 선배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저 즐거워 야유회며 세미나 때 짐꾼 노릇을 하면서 선배님이 사주시는 술을 여러 차례 마셨고, 이사도 “내가 사는 동네로 오너라”고 하시어 과천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시내에서 몇 차례에 걸쳐 마셔 취기가 돌아도 과천으로 오는 동안에는 깨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럼 선배님은 저를 꼭 술집으로 데려가 ‘엄격한 선배’로서 ‘철없는 후배’에게 저의 태작에 대해 조목조목 충고를 해주셨고, 때때로 분에 넘치는 칭찬도 해주셨습니다.
우러러볼 선배님이 지금 제 곁에 없는 것이 참 아쉽지만 선배님이 쓰신 시와 들려주신 말씀은 언제나 제 곁에 있습니다. 시를 배우는 후학들에게 선배님의 시와 시정신을 가르치겠습니다. 이 책이 그들을 위한 작은 길잡이의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2004년 4월
후배 이승하 올림
* 아래는 시전집을 소개한 글
2003년 5월 28일, “구름도 흘러가서 오지 않고/ 바람도 불려가서 오지 않는 곳/ 미처 못 가본 세상 밖”(임영조 유작시「해동갑」, 2003. 1. 12)으로 임영조 시인이 떠났다. 그의 나이 예순 한 살, 부지런한 생활 속에서도 끈을 놓지 않고 튼실하게 지어온 문학의 집(耳笑 : 귀로 웃는 집)이 막 완공을 앞두고 있을 무렵의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가 떠난 지 5주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펴내는 이번 전집은 한국문학사 속에서 임영조 시인의 시세계와 삶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임영조 시인은 비록 ‘마음은 늘 가난’했지만 문학적인 삶에 있어서는 최고의 행운을 누렸다. 중학교 때 신동엽 시인을 만나 글 잘 쓰고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총애를 받으며 문학 공부를 시작해, 대학 입학 후 서정주・박목월・김수영・이형기・김동리 시인 등 한국문단의 거장들 문하에서 문학의 진수를 배우고 익힌 흔치 않은 행운아였다.
시인으로서 서라벌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를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구수한 입담과 귀로 웃는다는 아호 ‘耳笑’를 서정주 선생에게서 얻을 정도로 좋았던 마음 씀씀이 덕분에 그에게는 유난히 믿고 아끼는 선후배가 많았다.
임영조 시전집 『그대에게 가는 길』(전2권)에는 임영조 시인이 그동안 펴낸 6권의 시집이 망라되어 있다. 제1시집『바람이 남긴 은어』(고려원, 1985), 제2시집 『그림자를 지우며』(현대문학, 1988), 제3시집『갈대는 배후가 없다』(세계사, 1992), 제4시집『귀로 웃는 집』(창작과비평사, 1997), 제5시집『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민음사, 2000), 제6시집『시인의 모자』(창작과비평사, 2003) 등.
* 아래는 충남 보령시 주산면 동오리 보령댐 청기와휴게공원에 세워진 시비의 전면에 새겨져 있는 시와 시비 뒷면에 새겨져 있는 시비 건립 취지문입니다.
물
무조건 섞이고 싶다
섞여서 흘러가고 싶다
가다가 거대한 산이라도 만나면
감쪽같이 통정하듯 스미고 싶다
더 깊게
더 낮게 흐르고 흘러
그대 잠든 마을을 지나 간혹
맹물 같은 여자라도 만나면
아무런 부담 없이 맨살로 섞여
짜디짠 바다에 닿고 싶다
온갖 잡념을 풀고
맛도 색깔도 냄새도 풀고
참 밍밍하게 살아온 생을 지우고
찝찔한 양수 속에 씨를 키우듯
외로운 섬 하나 키우고 싶다
그 후 햇빛 좋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증발했다가
문득 그대 잠깬 마을에
비가 되어 만날까
눈이 되어 만날까
돌아온 탕자의 뒤늦은 속죄
그 쓰라린 참회의 눈물이 될까.
시비 건립 취지문
귀가 잘생겨 아호가 이소(耳笑)인 시인 임영조(본관 풍천)는 1943년 10월 19일, 충남 보령시 주산면 황율리 104번지에서 태어나 2003년 5월 28일 과천에서 영면하였다. 주산초등학교와 주산중학교를 거쳐 서울 대동상업고동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온 그는 『월간문학』신인상(1970)을 수상하자마자 <중앙일보> 신춘문예(1971)에 당선함으로써 혜성같이 문단에 나왔다. 그의 시작은 실로 눈부셨다. 그 공로로 그는 서라벌문학상・현대문학상・소월시문학상을 받았으며 타계한 이후에도 소월시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국가는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시인이 다루었던 시세계는 ‘생활’과 ‘자연’이었다. 소재는 일상에서 취하였지만 내용은 항상 인생의 깊은 경지를 추구하여 평이한 시어와 간결한 구문으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의미를 순정하게 형상화하였다. 그리하여 평소 그의 이같은 시정신을 높이 샀던 문단의 동학들이 여기 보령댐을 굽어보는 공원 한 자락에 시비를 세워 그를 기린다.
2007년 7월 27일
임영조 시비건립추진위원회
주관 : 보령시・(사)한국시인협회・임영조시비건립보령시추진위원회・한국수자원공사보령권관리단
비문, 글씨 : 시비건립추진위원장 이근배 시인 / 디자인 및 흉상 제작 : 양태근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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