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지청구'

신간 ' 그리운 지청구' 꽃이 된 시(詩), 그 세상을 향한 헌화

시인답게 2015. 10. 21. 11:13

문학의전당 시인선 216

그리운 지청구 김원식 시집

 

 

그리운 지청구 김원식 시집 

김원식 시집 | 그리운 지청구 | 문학() | 신국판 | 118| 2015107일 출간

9,000| ISBN 979-11-5896-005-6 03810 | 바코드 9791158960056

 

 

[책 소개]

 

꽃이 된 시(), 그 세상을 향한 헌화

 

문학의전당 시인선216. 1988년 시집 꿰맨 글 맞춘 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원식 시인의 신작 시집. 그리운 지청구는 한마디로 꽃의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집요하리만큼 꽃을 바라본다. ‘이라는 관념을 시로 되살려내는 시인의 시선은 다채롭다. ‘민들레세상의 낮은 곳에만/ 하얀 꽃등을 켜는꽃으로, “달무리 진 시름 한 조각을/ 삯바느질 중인/ 새벽 한 시의 등잔불달맞이꽃으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등 굽은 달빛이 물 위에 그린 자화상? 이것도 달맞이꽃이다. “삼동에 속곳이 비치도록/ 붉게 우는꽃은? 동백이다. 시인이 시로 피워낸 꽃들은 서정의 문법을 따라 생명력, 자연의 이치, 풍류, 사랑과 그리움 등을 노래하는 한편 아버지와 어머니를, 5월의 광주를, 신앙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내밀한 시선에서 역사의식으로 또 종교로 옮겨가는 꽃의 서사는 연인과 가족과 사회와 시에 바쳐지는 헌화에 다름 아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꽃을 감상할 줄 안다. 이때 꽃을 꿈이나 아름다움으로 바꿔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꽃이 된 시들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펼쳐진 시집의 꽃향기가 짙다.

  

[추천 글]

 

여기,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비정한 세상의 한복판에서 순백의 시심을 한 송이 꽃으로 피워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시인이면서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사업가로, 시민운동가로, 문학단체 대표로 달려가고 있는 자유로운 가인(歌人)이다. 어쩌면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오히려 고독한 실존의 사색과 존재욕에 함몰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쉽게 결론 낼 수 없는 끝없는 원형을 향한 향수에 젖어 적막한 밤을 지새웠으리라.

김원식 시인은 세속과 원형의 담을 넘나드는 경계의 미학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성속(聖俗)을 초월한 제3지대의 아름다움이 있다. 특별히 이번 시집에서는 집요할 정도로 꽃에 고착된 시적 화자의 젖은 눈매가 돋보인다. 그 꽃의 채도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다. 더구나 최근 신앙의 세계에 새롭게 눈을 뜬 시인의 정화된 서정은 우리 영혼의 대기를 신선하게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기쁘다. 어느 누군가의 손에서 그의 시집이 펼쳐질 그 순간을 생각하면…….

소강석 시인(새에덴교회 목사)

  

[책 속으로]

 

사월의 사거리를 아시나요

 

 

오메, 징한 것

세곡동 사거리에 꽃마을이 있는데요

백목련 자목련은 속곳 벗고 허공에 들었고요

개나리 진달래는 하필 능 섶에 늘펀히 있다요

아따, 그뿐 아니고요

홍매화 살구꽃은 앞니 훤한 어르신 뜰 앞에서

홍홍홍 웃음을 참느라 키득대고요

첫 햇살로 세안한 연초록의 구애에 나는,

이내 자결한 향기처럼 길을 잃고 말았는데요

 

인생사 일장춘몽, 연신 혀를 차시던 할매

화무십일홍, 흰머리 소년과 바람이 나서는

이 잡것들아 거시기

그래도 봄날, 꽃 사태는 보고 살라 딴청이네요

근디 이건 또 머라요

산모롱이 저 함초롬한 꽃다지며 민들레꽃

해필 개나리 앞을 까치발로 서성대는 이유며,

자목련 그늘 아래 제 자태를 뽐내던 제비꽃

뒷감당 어쩌려고 색깔로 견주자 깐죽대는지요

 

이렇게 대책 없는 봄날,

영산홍 치마폭을 한사코 들추던 지빠귀들이

봄날의 금침 속으로 날아간 뒤, 저마저

춘정을 끌어 덮고 작심하고 누워버렸지요

인자는 님도 몰라요

행여, 제가 그립다면 사월의 사거리로 오셔서

한 열흘 곁에 누워 그냥, 꽃 이름도 묻지 마세요

바람의 손으로 꽃잎을 내리는 날까지

꽃동산 난장 아래 사랑도 도 잠시 내려놓자고요

  

[시인의 말]

 

오랜 몸살을 앓고 나서 시집을 엮는다.

위중하신 아버지와 너무 늦은 사랑과 관면(寬免)

핑계라면 핑계다.

 

스승 임영조 시인의 가르침을 한 행도 이루지 못했다.

육화되지 않은 문자들을 함부로 엮은 죄,

평생 짊어지겠다.

 

행여, 이 시집을 기꺼이 읽어주실 독자들께

아득한 시학이지만 더 공부를 높이겠다고 다짐을 한다.

대저 나의 살이가 단 한 사람의 향기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단풍 든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 무릎을 꺾습니다.’

  

[출판사 서평]

 

시인에게 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마도, 시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꽃만큼 많이 시의 소재가 된 것도 없을 것이다. 시인 묵객에게 꽃은 막막한 그리움과 하염없는 기다림의 상징이었고 열렬한 사랑과 서러운 이별에 대한 은유였다. 우리는 장미 하면 릴케를, 국화 하면 서정주를 떠올린다. 봄만 되면 우리 귓가에 들려오는 노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는 김동환의 시고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는 박목월의 시다. 김원식도 국내 시인들 가운데 꽃을 즐겨 노래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치열하다/ 참매미 목쉰 울음소리// 교교한 달빛 끌어 덮고/ 배롱나무꽃 숨이 차다// 우두망찰 서 있는 그대여/ 꽃무릇 눈두덩이 터진다

―「가을 서곡전문

 

가을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참매미가 여름이 가고 있다고 온몸으로 울어대기도 하지만 시인은 배롱나무꽃이 교교한 달빛을 끌어 덮고 숨이 차 하니 가을이 온 것으로 여긴다. “우두망찰 서 있는 그대는 배롱나무이리라. 아니면 화자의 연인으로 간주해도 무방하겠다. 꽃무릇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7~9월에 담자색 꽃이 핀다. 꽃무릇의 눈두덩이 터지든, 꽃무릇을 보고 눈두덩이 터지는 아픔을 느끼든, 가을이 이제 막 시작됨을 시인은 참매미의 목쉰 울음소리와 배롱나무꽃과 꽃무릇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느꼈다는 것이니, 자연의 변화에 민감한 시인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자목련을 다룬 두 편의 시를 보자.

 

목적어가 필요 없는 꽃봉은/ 수식어 같은 이파리도 사치다/ 오직 사모, 주어만 필요하다/ 허공의 행간을 겨우내/ 서리꽃 목필로 채운 뜻,/ 숭고한 사랑의 징표 때문이리라/ 황홀한 수줍음 여전한 너,/ 두 손 번쩍 들고 마중하다가/ 4월 첫 자리에 홍자색 연정/ 죄 엎지른 네 설렘을 알겠다/ 자지러지듯 고혹적인 점등식/ 혼절한 단문, 자목련을 읽는다

―「자목련을 읽다전문

 

자목련 자체가 한 편의 시다. 목적어와 수식어가 필요 없는. 주어는 사모(思慕). 시의 소재는 자목련이다. 자목련은 숭고한 사랑의 징표이면서 홍자색 연정을 뜻한다.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인데, 시인은 자지러지듯 고혹적인 점등식을 보고 혼절한 단문인 자목련을 읽어낸다. 아니, 자목련을 읽고 혼절하고 만다. 오직 꽃봉 하나로 할 말을 다하는 자목련이 엎지른 죄가 무엇일지, 상상의 공간이 확대된다. 죄와 설렘을 동반한 채 아슬아슬한 경계를 밟는 곳, 시인은 그 지점을 자목련의 몸을 빌려 다녀왔다. 그러기에 자목련을 한 편의 시로 둔갑시키는 놀라운 분장술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인데, 4월 자목련 꽃그늘 아래서 다음과 같이 시상을 떠올리고 시를 쓴다. 이번엔 자목련이 진다.

 

자목련 툭, 지는 날/ 너무 늦게 나에게 묻는다/ 네 마음의 묵정밭엔/ 무엇을 파종할 것이냐/ 저문 바람이 뿌린 시() 한 톨/ 허공의 정원에 살별로 뜬다

―「4월 꽃그늘 아래서전문

 

자목련이 지는 날, 자문해본다. 꽃도 졌는데 화자는 이제 마음의 묵정밭에 무엇을 파종할 것인가. 바람이 뿌린 시() 한 톨이 허공의 정원에 살별로 뜨, 화자는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던 존재가 사라지자 시인은 빈자리를 절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또한 비어 있다는 자각, 그곳에서 싹 틔울 한 톨의 시가 절실해지는 이유다. 4월의 꽃그늘 아래에서 맞이한 밤, 밤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시 쓰기다. 오이도에 가서 해당화를 보고는 시의 눈물로 부르는 마지막 사모곡이다”(해당화 별곡)라고 한 것도, 시와 꽃을 동일시한 시인의 자연관 덕분일 것이다. 시는 시인의 창조물이고 꽃은 신의 창조물이다. 시인을 짧게 발음하면 신이 되고 신을 길게 발음하면 시인이 된다.

 

지당한 함성들이 허공에 피었다// 그렁한 육신을 말리며/ 산울림이 된 외침들이/ 포도 알갱이처럼 다시 뭉쳤다/ 진즉 화석이 된 혈흔 위에서/ 폐허의 시간들이 종소리로 운다/ 달빛 가지에 등나무꽃 걸던 날/ 함부로 타협한 고단한 주검들이/ 망월동 표석처럼 저리 서 있다/ 자식 잃은 바람이 안부를 묻자/ 목청 잃은 새가 되어/ 총성 뒤로 숨은 심장을 쪼고 있다/ 바느질 당한 기억의 도시에서/ 세월의 앞잡이가 된 나,/ 명멸하는 진실에 난사를 당했다/ 오월의 눈빛과 달빛 사이로/ 자줏빛 함성 카랑하게 필 때/ 역사의 경계 밖으로/ 나는, 유배당했다

―「등나무꽃 달빛 아래; 5월 광주전문

 

시인이 꽃을 통해 생명력, 자연의 이치, 풍류, 사랑과 그리움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등나무꽃이 핀 밤에 5월의 광주를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덧 35년 전의 일이 되었다. 시인은 광주 시내 등나무 달빛 아래서 그날의 함성을 떠올린다. “화석이 된 혈흔 위에서/ 폐허의 시간들이 종소리로 운다고 하니 세월이 많이 흘러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화자는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세월만 흘러온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스스로를 책한다. 등나무꽃 하나하나는 그렇게 사라져 갔던 목숨들이라 할 수 있을까? 어느덧 역사가 된 비극을 등나무꽃 달빛 아래서 곱씹어보며 가슴을 치는 시인의 역사의식에 동참하게 된다. 개망초」 「청매화」 「나팔꽃」 「복수초도 편편이 의미가 깊지만 섬 뜰 마을같은 작품은 서정과 서경이, 인간과 자연이, 꽃과 꽃말이, 뭍과 바다가 조화를 잘 이루며 펼쳐져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런 시야말로 순수서정시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스러져 가는 것들은/ 분명 절정일 때가 있었을 것이다/ 무갑산 홀딱새 울음소리에/ 부스스 일어난 섬 뜰 강물들이/ 자작나무숲을 걸어 나오는 햇살을 마중한다/ 그때쯤 아내와 함께/ 남한강 푸른 백로 소리로 귀를 씻으며/ 꽃의 고요 속을 산책한다/ 초롱꽃 종소리 은은한 날/ 산안개 머리를 감는 강가에서/ 바람의 장단을 치는 각시붓꽃을 만난다

―「섬 뜰 마을부분

 

무릉도원이라고 할까 별유천지라고 할까,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 같다. 온갖 꽃들이 피어 있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백로 우는 소리가 환상적인 화음을 이룬 곳, 그곳에서 화자는 아내와 함께 남한강 푸른 백로 소리로 귀를 씻으며/ 꽃의 고요 속을 산책한다”. “사람도 꽃들의 어깨가 되어 섬 뜰에 절정의 향기가 굽이치면 좋겠지만 그 꿈은 남가일몽이리라. 하지만 인간은 꿈을 꿀 줄 알아야 한다. 시를 통해 꾸는 꿈, 그 꿈을 혹자는 백일몽이라고 하겠지만 우리에게 그런 꿈이 없다면 낙타 없이 사막을 걷는 것이다. 꽃도 못 보고 봄을 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자 소개]

 

김원식

1962년 전북 완주 대둔산 자락에서 태어나 1988년 시집 꿰맨 글 맞춘 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예술인총연합회 특선시인으로 선정되었고, 12, 13회 천상병 문학제 대회장을 역임했다. ()MBC S.R 프로덕션과 ()S.J필름&엔터테인먼트 대표로 핑클 3D MV’를 제작했으며, 영화 사마리아를 기획 제54회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白愛낭송시집 , Ⅱ』 『주간 덤과 거스름이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4회 천상병 문학제 귀천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시인의 말

 

1

 

가을 서곡

자목련을 읽다

달맞이꽃 뜨다

야생화

4월 꽃그늘 아래에서

동백

하얀 민들레

사월의 사거리를 아시나요

고추꽃처럼 피어나다

개망초

청매화

해당화 별곡

달맞이꽃

나팔꽃

등나무꽃 달빛 아래

복수초

 

2

 

데칼코마니

오래된 정원

대둔산 사모곡

묵정밭이 있는 풍경

참깨털이

절인 배추

어머니와 보릿고개의 실루엣

껌정고무신

보릿고개

위대한 진실

어머니의 망부가

4월은 여전히 월이다

만화방창 웃음꽃 피다

A.D. 첫날

11

매미처럼 따갑게 울다

 

3

 

폴라리스

섬 뜰 마을

부음

섬진강 진달래 섶에서

겨울 끝에서 부르는 연가

그대의 길

새벽 바다에서

정동진에서 울다

곳 갓

첫사랑

별루, 다시 선운사에서

치열한 사랑

향기 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쓸쓸함, 그 견고한 외로움

女寶, 如寶

그대에게 가는 길

천년의 길

 

4

 

소리꾼

귀로 웃는 스승

푯대를 세우다

시의 부고

노을이 쓴 시

모란장 대폿집

명태, 너처럼

가을 산행

금연(禁煙)

황정산에서 길을 묻다

잡목

귀천 소풍

복어 화석, ()의 뼈가 되다

가시연꽃

나의

 

해설꽃과 가족과 연인 그리고 시()를 위해 /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