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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詩김명리/이 화창한 봄날

시인답게 2006. 4. 14. 10:38
 

이 화창한 봄날

김명리


봄날엔 어느 봉분 할 것 없이 씀바귀꽃 핀다

이승과 저승의 잘 꿰맨 봉합선이

금세라도 째질 듯 샛노랗게 타오른다


산의 능선마다 휘황하다 저 물집!

생의 저쪽이 버들개지 물관부 속인 듯 퉁탕거린다


우수 지나는 빗소리에

소나무 때죽나무 한데 얼크러지고

핏자국 같은 새순들 대지의 아랫입술에 꿰매지고


봄하늘이 기우뚱 펼쳐든 만세력

한 생이 구름문양뿐인 낡은 책갈피에서

슬픔의 생몰일시란 아득히 지워지고 없다


봄밤엔 어느 봉분 할 것 없이 씀바귀꽃 진다

좀씀바귀 밀선(蜜腺) 따라 달빛 흐르고

길의 앞날이 함박눈처럼 몰려오고


나는 그대가 꾼 길고 긴 꿈

머지않아 우리들 생의 캄캄한 후미(後尾)도

한 떼의 반짝이는 박새 울음으로 흩어질 것이다


(문학사상 2004년 3월호)

출처 : 詩人의詩
글쓴이 : 시詩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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