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스크랩] 동화작가 된 ‘동자승 화가’ 원성 스님

시인답게 2006. 11. 24. 14:39

3년간 영국 유학길에 올랐던 ‘동자승 화가’ 원성 스님이 자연동화 《꽃비》를 펴내며 돌아왔다. 마음이 맑은 소년과 채송화 요정의 사랑 이야기 속에 환경 문제를 대입하면서, 놀랍도록 섬세한 그림체로 변신을 시도한 원성 스님을 만났다. 

 

 

17세에 출가해 해인강원, 중앙승가대학을 거친 원성 스님은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며 완성한 특유의 동자승 그림으로 종교를 초월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1999년 첫 책을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올랐고, 동자승 그림 하나만으로 30여 차례의  해외 전시를 열며 ‘불교계 한류 열풍’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한데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동자승 그림을 접으면서까지 그가 자연동화 작가로 나선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2002년 7월쯤 불교환경연대 요청으로 북한산 관통도로를 반대하는 3보 1배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서울역에서 조계사까지 여섯 시간을 걷는 동안, 뜨거운 아스팔트에 이마를 숱하게 맞댔지만 단 한 번도 흙이 닿은 적이 없었어요. 모든 땅이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으로 바뀌었으니까요.”


돈암동 대불정사에서 만난 원성 스님은 “평소 무심코 밟고 다니기만 했던 땅과 온몸으로 맞부딪치면서, 자연이 얼마나 많이 훼손되었나 하는 생각이 새삼 날카롭게 와 닿았다”고 토로했다. 2003년 초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서도, 개발 논리에 점차 사라져가는 자연을 보듬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다. 유학 시절 틈틈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자연동화 《꽃비》를 완성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영국 체류 중 현지인들이 전래 동화나 전설, 신화를 채집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지켜보면서 원성 스님은 ‘이야기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고 했다. 《꽃비》의 그림뿐 아니라 동화 창작까지 병행한 것은, 이야기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질 때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의 이기심을 경계하는 의도가 더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동자승 그림에 안주하지 않는 새로운 시도

뚜렷한 메시지를 담은 자연동화를 쓰면서, 원성 스님의 그림체도 복고풍의 섬세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바뀌었다. 자연을 의인화한 요정과 목신들이 등장하고, 현실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세계를 생생히 그려내기 위해서다. 원성 스님의 화풍에 익숙한 사람에겐 파격적인 변신으로 느껴질 법하다.

 

 

“저 역시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면서 걱정도 했죠.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화풍을 바꾸는 건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피카소나 이중섭 같은 화가들도 전 생애 동안 그린 그림을 보면, 한 사람이 그린 거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잖아요? 저 역시 동자승에만 안주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특정한 그림 양식을 선택해서 의도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다면, 그 그림이 만화가 되던 일러스트가 되던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원성 스님은 “언뜻 보기엔 많은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꽃비》 속에는 지금까지 그려온 꽃과 나무, 자연의 세계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고 말을 이었다. 단지 자연이 요정의 모습으로 의인화되고, 산사에 머물렀던 동자승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소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원성 스님이 추구했던 맑은 마음의 세계,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세계관은 여전히 그림 속에 녹아있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의 힘

《꽃비》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 코코와 채송화 요정에게는, 흔히 판타지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지니기 마련인 초인적인 힘이 없다. 코코는 전생에 요정 왕자였지만, 인간이 되길 자청하면서 13년만 살 수 있는 병약한 소년으로 태어난다. 채송화 요정 역시 목신에게 시험당하는 코코를 보호하려다, 날개를 찢기고 두 눈이 멀어버린다. 이들은 인간의 거대한 욕심 앞에서 한없이 미약한 존재다. 하지만 이렇게 약한 존재들이, 오직 의지만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간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은 작은 실천에서부터 비롯된다. 원성 스님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개인의 의지를 실천하는 용기다.

 

“만약 코코나 채송화 요정이 영웅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면 그저 유치한 이야기가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꽃비》에서 판타지적 요소는 배경일 뿐이에요.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님이 말씀하시길, 세상에서 ‘믿음, 소망, 사랑’만큼 소중한 것이 있다면 바로 ‘용기’라고 하셨어요. 우리에게도 살아가면서 악함과 잘못을 바로잡는 용기가 필요해요. 코코는 약하지만, 의지를 갖고 노력해서 세상을 변화시키죠.”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이상 기온으로 메마른 상가 화단에서 죽어가는 꽃들의 절규를 들은 코코는, 병약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양동이를 나르며 물을 준다. 채송화 요정은 혼자선 역부족이라며 안타까워하지만, 코코는 “하찮은 생명일지라도 그들이 시들고 병들어 죽어갈 때 버림받는다면 다시는 사람이나 요정을 위해 꽃을 피우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 순간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코코의 노력을 말없이 지켜보던 상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며 앞으로 화단의 꽃들을 직접 돌보기로 한 것이다. 

 

시들어가는 꽃을 보고 홀로 안간힘을 썼던 코코의 에피소드 속에는 원성 스님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스님은 어느 날  전시회 준비를 위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어 피를 흘리는 개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저걸 어째, 개가 다 죽어가네” 하고 수군거리거나 혀를 차며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 순간 원성 스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저 개의 입장이라면 얼마나 무서울까, 사람들이 죽어가는 나를 그저 구경만 하고 있다면….’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내려달라고 사정해서, 피투성이가 된 개를 껴안고 병원을 찾아 헤맸어요. 누구나 주체와 객체, 자연과 나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 저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외계인이나 이방인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 굉장히 슬프고 고독했지만 큰 깨달음을 얻었죠.”


‘바이러스’ 같은 인간의 이기심을 경계하며

사람들은 낮은 것을 천하게만 보고, 더러운 것을 더러운 상태 그대로만 본다. 하지만 지금 더럽고 악한 것도 애초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언제나 지금 모습 그대로 있어줄 것만 같은 자연도, 인간의 이기심이 계속된다면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병들고 말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이 지구를 죽이는 가장 큰 ‘바이러스’인지도 몰라요. 마치 곰팡이가 퍼져나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번져나가는…. 그래서 《꽃비》에 등장하는 도깨비에 인간의 삼독심(三毒心: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담아봤어요. 예를 들어 미국이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이라크 내전에 참여했다고 하지만, 실은 그런 자원 전쟁, 종교 전쟁의 배경에는 자기 욕심을 챙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죠. 이라크 사람들이 왜 테러를 시도했는지 그 원인은 무시하고, 보복으로 더 많은 민간인들을 죽이고…. 영국에 머무는 동안, 미국이 벌인 전쟁이 과연 테러를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기만 할까 하는 생각을 줄곧 했었어요.”

 


원성 스님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고요한 산사에 머물며 그림에 매진하는 해맑은 소년 같은 이미지만을 상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의 현실 인식은 치열했다. 다만 그런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소리 높여 외치거나 강요하지 않고 쉬운 구어체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거부감 없이 다가올 뿐이다. 그가 들려주는 자연동화를 들으며 누구나 친근함을 느끼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속삭이듯, 대화하듯 쉬운 언어로 풀어본 환경 이야기

“언어가 지식인들의 전유물처럼 된 것이 현실이죠. 하지만 언어는 현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도구이지,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사람들 곁에서 속삭이듯이,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언뜻 불교적 색채를 띤 듯하면서도 종교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다가오는 원성 스님의 글과 그림이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스님의 말을 듣고 보니, 문인이 아닌 여행가나 수녀님, 스님과 같은 종교인의 글이 대중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가 아닐까 싶다.

 

원성 스님은 《꽃비》에 등장하는 장면 중에서, 코코의 생명이 걸린 ‘약속의 유리병’을 깨뜨리기 위해 채송화 요정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인간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주는 채송화 요정은 의인화된 자연 그 자체다.


하지만 늘 아낌없이 주기만 한 자연도 이기적인 인간을 향해 서서히 경고를 보내오고 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온실 효과, 오존층 파괴, 산성비, 황사 현상, 열섬 현상 등은 그 엄중한 경고의 시작이다. 《꽃비》의 도입부 격인 요정 왕국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정 왕의 쓸쓸한 고백은, 자연이 인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발전하고 성장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높은 것을 세우고 빠른 것들을 만들지만 그것은 성장이 아니야. 빨리 가게 되면서부터 시간을 잃게 되었고, 넓은 땅을 차지하면서부터 자신이 설 땅을 잃었어. 많이 가지려고 하면서부터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잃었지, 사람들은.”


자연은 인간의 이기심에 병들어가지만,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기에 침묵하며 사라져갈 뿐이다. 아프다고, 이제는 그만 좀 하라고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자연 대신에, 원성 스님은 인간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원성 스님의 따뜻한 마음이, 책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꽃비처럼 뭇 사람들의 강퍅한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길 바란다.

 

*덧붙임-원성 스님이 12월 초에《꽃비》 출간 기념 사인회를 여신답니다.

사인회에 오시는 분들께는 원화 크기의 아트 포스터도 드린다고 해요.

스님의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반가운 소식인 것 같아 함께 적습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12월 2일(토) 오후 2시

교보문고 강남점-12월  3일(일) 오후 2시

영풍문고 종로점-12월  9일(토) 오후 3시

영풍문고 강남점-12월 10일(일) 오후 3시 

출처 : 문화예술
글쓴이 : 고경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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