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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0년 된 술도가 문 닫아야 하나....

시인답게 2006. 11. 28. 13:02
 

60년 된 술도가 문 닫아야 하나....

 

 

만들 때마다 맛이 달라지는 살아있는 술, 막걸리
아~ 그때 그 시절의 막걸리여 너는 어디로 갔는가?
세월 따라 추억 따라 가버렸나....

 

 

(주조장 외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막걸리, 이야깃거리가 참 많은 술이다. 많고 많은 기억... 그중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면 단연 술심부름이 아닐까 싶다. 무릇, 나만의 추억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때 그 시절의 아이들은 그랬다. 노란 주전자 들고서 주조장가서 술 받아 오는 게 생활이고 기쁨이었다. 기쁨?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말씀이다.

 

 

 

골목길 으슥한 곳에서 아무도 몰래 주전자 주둥이에 입대고 (꿀꺽 꿀꺽) 마시던 막걸리는 왜 그리도 맛있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막걸리 양이 표 나게 줄어들었다 싶으면 냇물을 더해서 오기도 했던 기억. 영문도 모르시는 아버지는 “오늘은 막걸 리가 왜 이렇게 심심하다냐?” 하셨지.

 

모내기철에 흙탕물 묻은 스테인리스 대접에 따라 마시던 막걸리 한잔과 새콤 달콤 무쳐낸 간재미 무침, 그 맛은 요즘에 분위기 좋은 곳에서 비싼 안주에 먹는다 해도 따라가질 못한다. 그 시절 그 현장으로 다시 가야만 맛볼 수 있는 기억속의 맛이 되었다.

 

 

(말 통의 술을 부모님 몰래 뚜껑에 따라 마시는 맛은 최고의 막걸리 맛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며칠 전 서산 웅도에서 한 주민에게 대접받은 뚜껑막걸리 한잔)

 

무더운 여름철에는 말술 통을 샘물에 띄어놓기도 했다. 말술 뚜껑에 따라 마시는 맛은 경험자들만 안다. 뚜껑에 따를 때는 대개 넘쳐흘렀어도 부모님 몰래 마시는 맛은 나를 환장하게 만들었다. 막걸리에 대한 기억 중에서 또 하나는 단술에 관한 거다.

 

요즘 아이들에게 떠먹는 요구르트가 있다면 그때는 단술이 있었다. 막걸리에 설탕을 넣고서 끓이면 밀가루 풀처럼 걸쭉하게 되었는데, 이게 요즘 식으로 말하면 별미라 할 수 있다. 수저로 떠먹으면 새콤, 달보드레한 맛이 났다. 아련한 추억의 맛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는 막걸리가 참 좋다. 막걸리가 좋은 이유는 꾸미지 않은 순수함에 있다. 고두 밥, 누룩, 물, 이 세 가지 천연재료 로만 만드는 막걸리. 마실 때도 격식 같은 건 필요 없다. 막걸리에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술이요. 탁주 한잔 쭈~욱 들이키고 나서 풋고추로 된장 찍어 먹으면 허허... 좋구나.

 

 

 

이도저도 없으면 깨소금 집어 입안에 털어 넣으면 탁주 마시는 데는 부담 저언~혀 없소이다. 그래서 막걸리를 대하면 고향에 온 듯 마냥 편하기만 하다. 이렇듯 한국인의 유전자와 가장 가까운 술 막걸리는 근래에 들어서 조금씩 그 맛이 퇴색되고 있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맛있는 막걸리를 만나기가 쉽지는 않다는 얘기다.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전통의 맛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있어서 전남 장흥군 장동면으로 향했다.

 

막걸리의 쇠퇴, 사라져가는 술도가

 

도시에서 집 5채도 살수 있었던 시골 주조장

요즘엔 막걸리 1말 배달하고자 왕복 40km를 가기도

 

 

 

그날은 무더위가 절정에 달했던 8월 중순경이었다. 대문에 걸린 ‘장동주조장’이란 조그만 목 간판만 없었다면 가정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곳이다. 김영환 사장님께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시골 조그만 주조장까지 찾아온 나그네를 반긴다. 사모님은 수박을 내 오신다.

 

 

(사장님과 술잔을 나누면서 세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직접 만든 막걸리와 밭에서 기른 풋고추를 안주 삼았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사장님은 담근 딸기주를 내왔고, 맛객은 완도에서 얻어온 장어 쓸개주와 건홍합을 꺼내 놨다)

 

김영환 사장님은 70년대부터 주조업을 해왔고 아버지 때부터 계산하면 주조장의 역사가 60년이나 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 만 하고 대를 이어 일을 한다는 보람과 긍지를 가질 만 하건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나조차도 금새 무거운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그저 술도가에 대한 추억과 낭만만을 생각하며 찾아왔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여러가지 술통들)

 

한때 막걸리는 국민주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주조장을 가지고 있으면 지역 유지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70년도에 주조장 가치평가를 해 봤더니, 주조장 하나 팔아서 광주에 집 5채는 살수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막걸 리가 이제는 쇠퇴의 기로에 서 있다. 한때 없어서 못 마시던 술이 이제는 있어도 안 마시는 세상이 된 것이다.

 

70년대에서 80년대 하반기까지만 해도 전국에 3,000여개의 술도가가 있었고, 전남 장흥 일대에도 25개 술도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작 여섯 군데(장동, 작천, 칠향, 병영, 안양, 도암) 술도가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두어 군데는 형식상의 주조장이라 할 정도로 오늘 내일 문 닫을 날만 기다리고 있고 부업인 목축에 더 기대는데도 있다. 술도가의 어려움은 장동주조장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그만 둘까, 명년에 그만둘까, 이쁘게 그만 둬야 할 텐데...”

 

라고 말씀 하시면서 진작에 그만 두었어야 했음에도 아버지의 유업인데다 우리 술에 대한 애착 때문에 차마 간판을 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몇 십 말 나가다가 뚝 끊어져서 버텨내지를 못하고 문 닫는 데가 많지만, 장동주조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소규모였기 때문에 자생력과 적응력은 있었는지 견딘다고 한다.

 

운도 따랐다. 문을 닫을 판인데 인근 지역의 장평, 유치, 보성웅치, 지역에서 차례로 문을 먼저 닫아서 그 지역까지 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술 한말을 배달하고자 유치까지 왕복 40km를 이동하기도 한다. 재료비와 인건비는 고사하고 기름값도 안 되지만 이마저 끊어질까봐 손해를 무릅쓴다. 이 말이 엄살이 아니라는 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 걸려온 술 배달 전화가 확인해 준다. 어딘가에서 5병을 주문하자

 

“5병? 기름값도 안 되지만 내가 갈게!”

 

하고 대답하면서 전화를 끊고는 막걸리 5병 가져다 달라고 한곳은 왕복 25km 걸리는 데라고 한다.

 


순수한 전통 막걸리는 쌀(밀가루), 누룩, 물

 

독일의 맥주는 세계인이 알아준다. 거기에는 자국의 술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순수한 맥주를 지켜가기 위해 법적으로도 뒷받침해 주고 있다. 1516년에 제정된 ‘맥주 순수법’, 맥주 순수법이란 맥주를 만드는데 있어 물. 맥아. 효모. 호프 이 네 가지 순수 원료 외에 일체의 인공적인 재료들은 첨가를 금하는 법이다. 방부제라든가 탄산, 설탕 같은 게 들어가면 위법이고 맥주로 인정을 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막걸 리가 판을 치고 있다. 오히려 전통 비법 그대로 만든 막걸리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전통순대보다 길거리에서 파는 당면순대에 길들여지듯, 막걸리도 정체불명의 제조법으로 만든 술이 진짜인줄 알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처럼 탄산이나 사카린(설탕), 각종 부재료로 만든 막걸리에 길들여지고 있는 상황에선 막걸리는 우리 전통의 술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하기만 하다.

 

 

(김영환 사장이 술 제조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김영환 사장의 말을 빌리면 전통적인 재료를 이용해 순수하게 만들어야 일단 막걸리가 좋고 그 다음에 다른 재료가 들어가기도 해야지, 막걸 리가 안 좋으면 이것저것 뭘 넣더라도 소용없다고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전통의 뿌리를 외면한 상태에서 만든 막걸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받을지는 두고 볼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영환 사장이 전통만을 고집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료는 예전 그대로지만 술 숙성 통은 항아리에서 스테인리스로 바뀌었다. 청결과 관리가 쉽다는 장점 때문이라고 한다.

 

막걸리 쇠퇴의 원인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대 대통령 중 막걸리를 가장 애용한 것으로 알려진 박정희 정부에서 막걸리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식량부족을 이유로 쌀 막걸리를 금지 하였고, (청와대에 들어가는 술은 쌀로 빚었다) 이는 막걸리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 계기가 된다.

 

가정에서 술 빚는 것조차 엄격하게 단속하는 바람에 집집마다 고장마다 내려오던 고유한 술 비법이 사라지기도 한다. 술맛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든 결과를 가져왔고, 그래서 음식기행이란 말은 있어도 막걸리기행이란 말은 생소하기만 하다. 또 그 당시 주조장에 대한 세무조사는 거의 탄압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어.

몇 년 전 꺼, 쥐 오줌 먹은(묻은) 매출전표까지 계산하면 틀려.

그래서 벌금도 많이 냈어.”

 

김영환 사장의 말이다.

 

 

 

 

(실비옥에 들러 막걸리를 마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현해 놓고 있다/ 배다리 술 박물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민적인 이미지는 농촌에서 농부와 어울려 마시던 막걸리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만큼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고 다시 말하면 농촌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영농 기계화가 도입되기 전에는 모내기나 벼 수확은 모두 놉을 얻어서 해야 했다. 많게는 2~30명까지도 얻는데 이때에 싸고 양 많고 배까지 부르게 해 주는 막걸리만큼 좋은 술이 어디 있었겠는가? 필연적으로 막걸리가 많이 소비될 수밖에 없다.


영농 기계화가 도입되면서는 높(일꾼)을 얻어 농삿일을 하던 풍경도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막걸리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여러 인원에게는 싼 술을 내놓을 수밖에 없지만 한 사람에게는 대접을 해야 하기에 맥주가 막걸리를 대신하게 된다. 영농기계화는 죽어가는 막걸리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시골 사람이라고 해서 막걸리를 찾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동네 무당 알아주지 않듯이 지역민들은 더 이상 막걸리를 찾지 않는다. 일은 고 되도 먹는 것이라도 멋있게 먹자라는 인식 때문인지 막걸리보다는 맥주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농협 면세점에서 파는 막걸리와 맥주의 가격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것도 이유다. 막걸리 750원 맥주 1,000원.

 

맛있는 막걸리의 조건

 

70년대 후반에 통일 쌀이 남아돌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막걸리 온도를 8도까지 올렸다. 하지만 그리 호평을 받지 못했다. 막걸리는 6도일 때 가장 뛰어난 맛이 난다. 6도에 못 미치면 맛도 떨어질 뿐 아니라 변질도 빨리 온다. 6도가 넘어가면 머리가 아프고 속에서 받친 듯 거부감이 든다.

 

예전에는 술이 잘 나가다보니 5.5도까지도 내려가기도 했지만 요즘은 반대가 되었다. 술이 변하는 데는 2가지 이유가 있는데 온도가 높았을 때와 도수가 약했을 때이다. 지금은 술이 안나가다 보니 빨리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느 주조장이던지 6.5도 내지는 7도를 넘기기도 한다고 한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물 반 컵 정도 섞는 것도 막걸 리가 더 맛있어지는 방법일 수 있겠다)

 

쌀 막걸리가 맛있을까 밀가루 막걸리가 더 맛있을까? 쌀 반, 밀가루 반 들어간 막걸 리가 맛있다. 예전 막걸리는 누룩막걸리라 할 정도로 누룩이 만이 들어갔다. 누룩의 원료는 밀이다. 자연적으로 쌀과 밀가루의 비율이 엇비슷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요즘의 쌀 막걸리는 누룩의 함량이 떨어지고, 밀가루 막걸리는 쌀 성분이 없기 때문에 예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좋은 막걸리는 쓴맛,단맛,시원한 맛, 신 맛, 감칠맛, 등 7가지 맛이 난다고 한다. 이 중에 신맛과 단맛은 상생의 원리다. 단맛이 들어가면 신맛도 살려준다. 맛있는 신맛을 위해서는 단맛이 필요하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단맛을 많이 가미한 막걸리가 넘쳐난다.


막걸 리가 3~4일 지났는데도 단맛이 난다면 사카린류가 들어간 것이고 단맛이 줄어들면 아스팜탄(국세청에서 허가난 식물성 당분)이 들어갔다고 보면 맞다. 막걸리를 발효시키는 효모가 아스팜탄을 먹기 때문이다. 김영환 사장은 아스팜탄을 소량 첨가하기는 하지만 싸면서 단맛이 오래가는 사카린에 대한 유혹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막걸리에 사카린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도 단맛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술이 맛있게 발효되고 있다.1차 발효과정, 여기에다 물을 부어 걸러내면 막걸리가 된다)

 

 

 

(걸러낸 막걸리, 2차 발효를 시킨다)

 

막걸리는 막 걸러내서 막걸리라고 한다. 그래서 쉽게 만들어지는 술 같지만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를 정도로 까다로운 술이다. 오랫동안 술을 빚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열 번 만들면 여덟 번은 맛이 맞고 두 번은 안 맞을 정도라고 하니 쉽지 않은 술임에 틀림없다. 막걸리는 살아있다. 그래서 진정한 막걸리 맛을 보려면 살균주가 아닌 발효주를 마셔야 한다. 김영환 사장은 말한다.

 

“음식 중에서 변하지 않은 음식을 선호하다 보니 병이 많이 생기는 것 같어. 변하는 음식을 변하기 전에 먹어야 해. 그런데 사람들은 변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 설탕, 조미료, 소주, 이런 것들을 먹으니까... ”


생각해 보니 우리 주위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음식들이 참 많기도 하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음식들이 꼭 나쁜 음식이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겠지만, 그것들에는 생명이 없다. 생명이 있는 먹을거리에서 어느샌가 죽어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우리는 살고 있다.

 

도시, 늘어나는 막걸리 소비

 

장동주조장은 맛있는 술을 만들어놓아도 제때에 소비가 안 되어, 시어진 술이 고추밭에 탄저병 예방용으로 헐값에 팔려진다. 그래서 인터넷 판매나 택배배달을 말씀 드렸더니 배달과정에서 맛이 변할 수 있다면서 반대의사를 표한다.


하지만 맛이 변하지 않게 얼마든지 판매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고민을 해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믿는다.

 

앞서 막걸리의 쇠퇴라고 했고 술도가는 오늘 내일 문 닫게 될지 모른다고 했지만 도시에서는 막걸리 소비가 늘고 있다. 일단 반가운 일이다.  최근 개업하는 막걸리 전문점도 부쩍 늘고 있다. 전주의 안주가 무료로 나오는 주점을 벤치마킹했다. 종로의 허름한 고갈비 집에서 하루 동안 소비되는 막걸리양은 장동주조장의 한달 판매량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시는 막걸리지만 어디서 어떻게 제조된 막걸리인지 알고 마시는 이 몇이나 될까? 천원짜리 식품 하나 살 때도 제조회사와 제조 년 월일을 확인하면서 막걸리는 주는 대로 마신다? 우리의 술 문화가 관대하다지만 술에 대해서까지 관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수없이 많은 막걸리를 마셨지만 제대로 된 맛은 찾기 힘들었기에 믿음과 신뢰가 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골에서 제대로 된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은 나가떨어지고,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막걸리는 대량으로 유통되는 이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곳뿐인 다방도 직종분류가 되어있지만 주조장은 기타로 분류되고 있다)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손님으로 가득 찬 도시의 주점과 막걸리 한말을 배달하기 위해 왕복 40km 넘게 달리는 시골 주조장의 현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전화번호부를 보여준다. 장동면 상가안내  전화번호부에 장동주조장은 맨 끝 기타 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술의 현주다.  -맛객-

 

장동주조장 / 061) 862-0035  장흥군 장동면 배산리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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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는 이야기
글쓴이 : 맛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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