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하는 벗들에게 ‘왜 하필 문학이라는 걸 하느냐’고 물어보면, 열 명 중 아홉 명 정도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다른 무엇을 탄압하지 않는다”고. 나 역시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문학 중에서도 ‘리얼리즘’의 진정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실적 묘사일까, 아니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섬세한 붓터치일까. 나는 리얼리즘의 힘은 ‘타자에 대한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밥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긍정적인 밥’, 전문.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고등학교 무렵 문학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우리에겐 정호승, 안도현, 곽재구라는 스승들이 있었다. 이들이 우리에게 직접 시를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시를 쓰는 법’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얻었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 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맟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전문.
둘러보면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만 눈에 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선을 넓혀보면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다가도 지하철역 입구에 웅크리고 있는 노숙인의 모습을 본다.
시선을 아래로 두고 다니면 그럴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언론에서도 부추긴다. 아내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송프로그램은 주말 저녁 KBS에서 방영하는 ‘1% 어쩌구’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방송 노조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 양극화를 극렬하게 부추기는 그 따위 프로그램을 왜 그냥 두냐는 말이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 ‘눈물은 왜 짠가’, 전문.
by 시간의 상처
* <무브온21블로거기자단>이란 : 무브온21에서 활동하는 논객들이 모여 구성한 기자단입니다. 무브온21의 주요 칼럼과 무브온21 논객들이 기획한 기사와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 여기에 가시면 시인의 시를 좀 더 보실 수있군요 올겨울 시인에게 소금 한 됫박 드려야겠습니다 http://blog.daum.net/khl600/7926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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