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世間)의 쇄사(事)에 번심(煩心)이 일었는지, 수격삼천리(水擊三千里)라 장생(莊生)이 말한 대붕(大鵬)의 위세에 짓눌렸는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베란다에 나가 일도징강(一道澄江)에 비치는 월악(月岳) 영봉의 효색(曉色)을 바라보니 채색 아닌 수묵의 농담이 끝없이 춤을 추건만 그 선경(仙景)의 적정(寂靜)을 깨는 것은 와공(蛙公)의 합창이로고. 신휘(晨暉)를 가르는 새벽닭의 울음소리는 와공의 합창을 잠재우고 온갖 산조(山鳥)의 지저귐을 유도하건만, 세파(世波) 탓인지 오심(吾心)의 비감(悲感) 탓인지, 계명(鷄鳴)은 창랑(暢朗)치 아니하고 피 토하는 계면일 뿐이로다. 무엇이 저토록 처창(悽愴)할꼬! 먼동이 트자마자 개벽의 서광을 따라 금수산 신선봉 계곡을 올랐다. 십리가량이나 점입소로(漸入小路)하는데 갓 돋는 녹엽(綠葉)을 투과하는 조광(朝光)의 빛줄기들은 계곡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마저 녹색으로 물들이고 만다. 어찌 삼신산(三神山)이 따로 있으랴! 높음이 하늘보다 더 높은 것 없으나 도리어 아래로 내려가고 맑음이 담수보다 더 맑은 것 없으나 도리어 깊어 검디검도다 스님은 부처님 정토에 거하니 욕심이 있을 수 없고 객은 신선의 근원에 들었으니 늙음 또한 슬프지 않구나! 정원의 깨달은 뜻 저 석금이 울어대고 선경이 더욱 선하니 오히려 세속과 분별이 없도다 천지의 이 큰 아름다움은 말이 없고 사시의 흐름도 담론을 떠나 있건만 세상을 말하는 소인배들의 왜곡은 끊임이 없도다!
|
'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수필(隨筆) l 피천득 (0) | 2007.06.07 |
---|---|
[스크랩] 영정 앞에 놓여진 수필집 '인연' (0) | 2007.05.26 |
[스크랩] 개그맨 김형곤 추모 1주년 추모사 (0) | 2007.04.03 |
한국의 기술조폭 기쁨조에게 드리는 소망/ 양남하 시인 (0) | 2006.06.20 |
10년 만에 휴스턴에서 날라온 기적 (0) | 2006.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