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술조폭 기쁨조에게 드리는 소망
忍冬/양남하
“미련한 놈 잡아들이라 하면 가난한 놈 잡아들인다.”란 말이 ‘오죽 했으면 우리 사회에서 공감하는 속담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돈이 없으면 잘난 이도 못난이 대접밖에는 못 받는다는 뜻으로, 배금주의에 젖은 세상인심을 비꼬는 말이리라.
나는 신문이나 TV를 가급적 보지 않으려는 사람 중 하나이다. 가끔 보거나 듣게 됨에도 불구하고 내 눈을 아프게 하는 안쓰러운 제목들도 제법 많다.
「한은, "폭탄주 강요 몰아내라" 호소에 곤혹(연합뉴스; 2003.12.24), 참여연대 “국감 '술자리' 의원 윤리특위 회부해야”(오마이뉴스; 2005.09.27 ), 검찰, 과기부·예산처 공무원 향응 조사(SBS; 2005.11.18), 女검사 32명 "폭탄주에 상명하복 이젠 그만"(2005. 12. 5; 매일경제), 진실 드러난 朴정권 용공조작(2005.12.8; 서울신문), 기업간부 53% “性접대 여전”(2005. 12. 15; 서울신문) 등등…」
노무현 정권 이후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사회지도층은 너나 할 것 없이 썩어빠진 냄새가 물씬거린다. 끼리끼리 똘똘 뭉쳐 재 잇속만을 챙기다 걸리면 재수 나쁘게 걸린 것이라며, 은폐와 오리발을 내미는 철면피들이 고위공직자로 득세하고 있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구제불능이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퇴직자를 챙겨주는 문화가 살아 있거나 퇴직했던 자가 금의환향하는 경우가 있는 곳에는 기술조폭 기쁨조문화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그 곳 구성원들은 이에 순응하지 못하면 용퇴를 하거나 찬밥신세를 면키 어렵기 때문에 거부감도 많지 않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북한에는 더 심하다. 김정일 기쁨조는 사전에 엄선한다고 한다. 이런 정보는 1997년 북한공작원에 의해 피살된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 씨와 2001년 12월 조선일보통일문제연구소의 발표에 의해서 그 자격요건 등이 하나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기쁨조 출신 단원들은 한결같이 김정일 취향인ꡐ둥근 얼굴에 귀염성 있는 미인ꡑ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기쁨조의 기준은 키 160㎝ 이상으로 몸매가 날씬해야 한다. 그리고 사상성분이 투철한 20세 전후의 미모의 여성이어야 기쁨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일차적 조건이 맞는 사람은 성분조사와 성병 등 엄격한 신체검사를 거친 후 일정기간 분야별로 사전교육을 시켜 각처에 배치된다. 기쁨조의 적임자로 뽑히면 당 간부의 자식이라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이 사실은 2003년 2월 10일 발매된 일본의 주간지 <주간현대>에서 '김정일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기쁨조의 양성 과정과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기쁨조는 성적인 유희를 담당하는 만족조, 마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행복조, 춤과 노래에 정통한 가무조 등 3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장기간의 교육 과정을 통해 전공이 정해진다고 한다. 연령은 14~25세로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우선 이성교제의 경험이 무조건 없어야 한다. 두 번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2차례에 걸친 정밀 검사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특히 철저한 장기와 비뇨기 검사가 통과되어야한다. 네 번째,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검사에서 처녀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필자가 느낀 유능한 한국의 기술조폭 기쁨조들의 공통적인 자격요건을 요약하면,
첫째, 우선 머리가 잘 돌아가야 한다.
ꡒ눈을 가리고 사악한 것을 보지 말고(See no evil), 귀를 막고 사악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Hear no evil), 입을 막고 사악한 말을 하지 않는(Speak no evil)다ꡓ라는 현자의 가르침을 “본인이 책임질 위험이 있는 일은 보지 말고, 본인이 부담스러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는 일은 듣지 말며, 개인 영달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아예 발설하지도 말라”로 자동해석 할 정도의 기본능력은 되어야 한다. 이들 간에는 이 계율에 따라 상사가 저지르는 부조리는 못본 척 하고, 민원이 죽 끓듯 해도 부처가 책임질 일은 못들은 척 하며, 관료사회의 잘못된 관행도 본인에게 이익이 없으면 지적하지 않는 것이 절대 불문율이리라.
둘째, 항상 원칙보다는 처세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안 되는 줄 알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폭탄주나 노래 한 곡 뽑으라고 명령하면, 번개같이 조아림은 물론 두목의 방귀소리는 아름다운 노래 같다고 애살스럽게 아부하는 속물체질까지 두루 갖추어야 한다.
끝으로는 “합심전력, 일치단결, 일사분란”이란 구호의 끈으로 서로를 단단하게 동여매어야 한다.
일찍이 다산 선생은 공직자가 행해야 할 처신에 대하여 분명한 방침을 『목민심서』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즉, “권문세가라고 해서 후하게 섬겨서는 안 된다(權門勢家 不可以厚事也)” 라고 갈파하셨다. 이어서 이렇게 행했던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열거하고 있다.
성희안(成希顔: 1461-1513)이라는 고관은 중종반정 때의 주역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어 영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에 이른 권문세가의 인물이었다. 정붕(鄭鵬: 469-1512)은 학문이 높은 선비로 그 무렵에 청송부사(靑松府使)를 지낸 분이다. 성희안이 정붕에게 청송에서 많이 나는 잣과 벌꿀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여기에 정붕의 태도를 보면 얼마나 훌륭하게 처신했던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잣나무는 높은 꼭대기에 있고 벌꿀은 백성들 집안의 벌통에 있는데 부사로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물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松在高峯頂上 蜜在村家桶中 爲太守者何由得之)”라고 재치 있는 답변으로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답변을 받은 성희안은 부끄럽게 여기고 영의정이라는 고관이 시골의 말단수령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상관의 옳고 바른 요구와 부탁에는 의당 지체 없이 순종하는 것이 하급 공직자의 당연한 도리이지만, 아무리 높은 상관이나 권문세가라 하더라도 그 요구가 바르지 못하고 부당한 내용이라면 의연히 버티며 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다.
‘미련한 사람이 범 잡는다’고는 하지만, 미련하게 산다는 것이 속세의 맛을 느끼며 사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는지를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 더 있고 싶어도 내가 늙어 내가 짐이 될 것이 염려되기 때문에 “소록도에서 43년 봉사하다 빈손으로 오스트리아 고향으로 돌아간 수녀들”과 관련된 2005년 12월 3일자 서울일보의 사랑의 기쁨조 관련기사는 미련이 담벼락을 뚫은 향기로 적셔올 수밖엔…….
『무려 43년 동안 자신들과 동고동락한 '벽안(碧眼)의 천사' 마리안느(Marianne Stoe ger) 수녀와 마가렛(Margreth Pissarek) 수녀가 이른 아침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보답은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성당에 모여 두 수녀를 위한 밤샘기도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지난 62년 28살 젊은 나이에 소록도에 들어온 그리스도왕의 수녀회 소속 두 수녀. 두 수녀의 봉사활동을 소개하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신문ㆍ방송사 기자들이 소록도에 들어가 접촉을 시도했지만 인터뷰는커녕 사진 한 장 못 건져 나왔다. 떠난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은 이유도 주민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해서였다.
두 수녀는 육지로 나오는 배에서 소록도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며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43년 생활을 정리한 짐이라곤 낡은 여행 가방이 전부였다. 마리안느 수녀는 "43년 전 부모 형제를 떠나 소록도에 올 때는 기뻐서 웃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도 했다.
이들은 60년대 초부터 모국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에서 보내준 의약품과 지원금 등으로 환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지원금은 주로 쓰러져가는 초가를 현대식 주택으로 개량하는 데 썼다. 그 때는 한센병 환우들에 대한 국내 관심이 전무하다시피한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환우들 장애교정수술을 주선하고 물리치료기를 도입해 재활의지를 북돋으며, 한센병 자녀 영아원운영 및 보육사업, 재활치료와 계몽, 자활정착사업 등에 공들여왔다
빗자루가 망가지면 청테이프를 붙여 사용할 만큼 청빈하게 살면서 환우들에게 사랑을 쏟았던 두 할매 수녀는 친구와 은인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이제 우리가 없어도 환우들을 잘 보살펴주는 간호사들이 있기에 마음 놓고 떠난다"며 "부족한 외국인에게 보내준 여러분의 사랑과 존경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아픈 곳을 감싸지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제 아픔 버려두고도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에 이 사회도 살 만한 곳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믿어진다.
그래서 다산 선생은 부당한 부탁을 과감히 물리치는 그런 공직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바랐던 것이었으리라. 그는 “목민심서”에서 공직자라면 건전하고 화목한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붕괴되고 이혼율이 높고 안정된 가정이 적어지는 시대에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는 소견이 천박한 공직자의 부인들이 저지르는 사치스런 생활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도 역력하게 설명하면서, 고관대작의 부인으로서의 영광도 훌륭한데 하필이면 온갖 장식물로 의복을 사치스럽게 하고 먹는 음식까지 호화롭게 한다면 모두의 미움을 사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일제식민시대 환경이었으면 매국노 이완용을 능가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뻔뻔한 기술조폭 기쁨조들을 걱정하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마음을 다하여 나라와 국민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구름이 연륜 더해/생명의 단비 되고//녹엽은 단풍 되어도/시심(詩心) 일깨우듯//그대 노을로/밝은 사회 일깨우는 달존(達尊)되시기를!】〈졸시, “그대에게 드리는 소망”전문〉 (풍자문학, 2006년 여름호)
※달존(達尊); 세상사람 모두가 존경할 만한 사람.
忍冬/양남하
“미련한 놈 잡아들이라 하면 가난한 놈 잡아들인다.”란 말이 ‘오죽 했으면 우리 사회에서 공감하는 속담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돈이 없으면 잘난 이도 못난이 대접밖에는 못 받는다는 뜻으로, 배금주의에 젖은 세상인심을 비꼬는 말이리라.
나는 신문이나 TV를 가급적 보지 않으려는 사람 중 하나이다. 가끔 보거나 듣게 됨에도 불구하고 내 눈을 아프게 하는 안쓰러운 제목들도 제법 많다.
「한은, "폭탄주 강요 몰아내라" 호소에 곤혹(연합뉴스; 2003.12.24), 참여연대 “국감 '술자리' 의원 윤리특위 회부해야”(오마이뉴스; 2005.09.27 ), 검찰, 과기부·예산처 공무원 향응 조사(SBS; 2005.11.18), 女검사 32명 "폭탄주에 상명하복 이젠 그만"(2005. 12. 5; 매일경제), 진실 드러난 朴정권 용공조작(2005.12.8; 서울신문), 기업간부 53% “性접대 여전”(2005. 12. 15; 서울신문) 등등…」
노무현 정권 이후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사회지도층은 너나 할 것 없이 썩어빠진 냄새가 물씬거린다. 끼리끼리 똘똘 뭉쳐 재 잇속만을 챙기다 걸리면 재수 나쁘게 걸린 것이라며, 은폐와 오리발을 내미는 철면피들이 고위공직자로 득세하고 있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구제불능이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퇴직자를 챙겨주는 문화가 살아 있거나 퇴직했던 자가 금의환향하는 경우가 있는 곳에는 기술조폭 기쁨조문화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그 곳 구성원들은 이에 순응하지 못하면 용퇴를 하거나 찬밥신세를 면키 어렵기 때문에 거부감도 많지 않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북한에는 더 심하다. 김정일 기쁨조는 사전에 엄선한다고 한다. 이런 정보는 1997년 북한공작원에 의해 피살된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 씨와 2001년 12월 조선일보통일문제연구소의 발표에 의해서 그 자격요건 등이 하나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기쁨조 출신 단원들은 한결같이 김정일 취향인ꡐ둥근 얼굴에 귀염성 있는 미인ꡑ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기쁨조의 기준은 키 160㎝ 이상으로 몸매가 날씬해야 한다. 그리고 사상성분이 투철한 20세 전후의 미모의 여성이어야 기쁨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일차적 조건이 맞는 사람은 성분조사와 성병 등 엄격한 신체검사를 거친 후 일정기간 분야별로 사전교육을 시켜 각처에 배치된다. 기쁨조의 적임자로 뽑히면 당 간부의 자식이라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이 사실은 2003년 2월 10일 발매된 일본의 주간지 <주간현대>에서 '김정일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기쁨조의 양성 과정과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기쁨조는 성적인 유희를 담당하는 만족조, 마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행복조, 춤과 노래에 정통한 가무조 등 3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장기간의 교육 과정을 통해 전공이 정해진다고 한다. 연령은 14~25세로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우선 이성교제의 경험이 무조건 없어야 한다. 두 번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2차례에 걸친 정밀 검사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특히 철저한 장기와 비뇨기 검사가 통과되어야한다. 네 번째,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검사에서 처녀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필자가 느낀 유능한 한국의 기술조폭 기쁨조들의 공통적인 자격요건을 요약하면,
첫째, 우선 머리가 잘 돌아가야 한다.
ꡒ눈을 가리고 사악한 것을 보지 말고(See no evil), 귀를 막고 사악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Hear no evil), 입을 막고 사악한 말을 하지 않는(Speak no evil)다ꡓ라는 현자의 가르침을 “본인이 책임질 위험이 있는 일은 보지 말고, 본인이 부담스러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는 일은 듣지 말며, 개인 영달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아예 발설하지도 말라”로 자동해석 할 정도의 기본능력은 되어야 한다. 이들 간에는 이 계율에 따라 상사가 저지르는 부조리는 못본 척 하고, 민원이 죽 끓듯 해도 부처가 책임질 일은 못들은 척 하며, 관료사회의 잘못된 관행도 본인에게 이익이 없으면 지적하지 않는 것이 절대 불문율이리라.
둘째, 항상 원칙보다는 처세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안 되는 줄 알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폭탄주나 노래 한 곡 뽑으라고 명령하면, 번개같이 조아림은 물론 두목의 방귀소리는 아름다운 노래 같다고 애살스럽게 아부하는 속물체질까지 두루 갖추어야 한다.
끝으로는 “합심전력, 일치단결, 일사분란”이란 구호의 끈으로 서로를 단단하게 동여매어야 한다.
일찍이 다산 선생은 공직자가 행해야 할 처신에 대하여 분명한 방침을 『목민심서』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즉, “권문세가라고 해서 후하게 섬겨서는 안 된다(權門勢家 不可以厚事也)” 라고 갈파하셨다. 이어서 이렇게 행했던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열거하고 있다.
성희안(成希顔: 1461-1513)이라는 고관은 중종반정 때의 주역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어 영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에 이른 권문세가의 인물이었다. 정붕(鄭鵬: 469-1512)은 학문이 높은 선비로 그 무렵에 청송부사(靑松府使)를 지낸 분이다. 성희안이 정붕에게 청송에서 많이 나는 잣과 벌꿀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여기에 정붕의 태도를 보면 얼마나 훌륭하게 처신했던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잣나무는 높은 꼭대기에 있고 벌꿀은 백성들 집안의 벌통에 있는데 부사로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물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松在高峯頂上 蜜在村家桶中 爲太守者何由得之)”라고 재치 있는 답변으로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답변을 받은 성희안은 부끄럽게 여기고 영의정이라는 고관이 시골의 말단수령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상관의 옳고 바른 요구와 부탁에는 의당 지체 없이 순종하는 것이 하급 공직자의 당연한 도리이지만, 아무리 높은 상관이나 권문세가라 하더라도 그 요구가 바르지 못하고 부당한 내용이라면 의연히 버티며 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다.
‘미련한 사람이 범 잡는다’고는 하지만, 미련하게 산다는 것이 속세의 맛을 느끼며 사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는지를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 더 있고 싶어도 내가 늙어 내가 짐이 될 것이 염려되기 때문에 “소록도에서 43년 봉사하다 빈손으로 오스트리아 고향으로 돌아간 수녀들”과 관련된 2005년 12월 3일자 서울일보의 사랑의 기쁨조 관련기사는 미련이 담벼락을 뚫은 향기로 적셔올 수밖엔…….
『무려 43년 동안 자신들과 동고동락한 '벽안(碧眼)의 천사' 마리안느(Marianne Stoe ger) 수녀와 마가렛(Margreth Pissarek) 수녀가 이른 아침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보답은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성당에 모여 두 수녀를 위한 밤샘기도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지난 62년 28살 젊은 나이에 소록도에 들어온 그리스도왕의 수녀회 소속 두 수녀. 두 수녀의 봉사활동을 소개하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신문ㆍ방송사 기자들이 소록도에 들어가 접촉을 시도했지만 인터뷰는커녕 사진 한 장 못 건져 나왔다. 떠난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은 이유도 주민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해서였다.
두 수녀는 육지로 나오는 배에서 소록도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며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43년 생활을 정리한 짐이라곤 낡은 여행 가방이 전부였다. 마리안느 수녀는 "43년 전 부모 형제를 떠나 소록도에 올 때는 기뻐서 웃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도 했다.
이들은 60년대 초부터 모국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에서 보내준 의약품과 지원금 등으로 환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지원금은 주로 쓰러져가는 초가를 현대식 주택으로 개량하는 데 썼다. 그 때는 한센병 환우들에 대한 국내 관심이 전무하다시피한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환우들 장애교정수술을 주선하고 물리치료기를 도입해 재활의지를 북돋으며, 한센병 자녀 영아원운영 및 보육사업, 재활치료와 계몽, 자활정착사업 등에 공들여왔다
빗자루가 망가지면 청테이프를 붙여 사용할 만큼 청빈하게 살면서 환우들에게 사랑을 쏟았던 두 할매 수녀는 친구와 은인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이제 우리가 없어도 환우들을 잘 보살펴주는 간호사들이 있기에 마음 놓고 떠난다"며 "부족한 외국인에게 보내준 여러분의 사랑과 존경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아픈 곳을 감싸지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제 아픔 버려두고도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에 이 사회도 살 만한 곳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믿어진다.
그래서 다산 선생은 부당한 부탁을 과감히 물리치는 그런 공직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바랐던 것이었으리라. 그는 “목민심서”에서 공직자라면 건전하고 화목한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붕괴되고 이혼율이 높고 안정된 가정이 적어지는 시대에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는 소견이 천박한 공직자의 부인들이 저지르는 사치스런 생활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도 역력하게 설명하면서, 고관대작의 부인으로서의 영광도 훌륭한데 하필이면 온갖 장식물로 의복을 사치스럽게 하고 먹는 음식까지 호화롭게 한다면 모두의 미움을 사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일제식민시대 환경이었으면 매국노 이완용을 능가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뻔뻔한 기술조폭 기쁨조들을 걱정하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마음을 다하여 나라와 국민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구름이 연륜 더해/생명의 단비 되고//녹엽은 단풍 되어도/시심(詩心) 일깨우듯//그대 노을로/밝은 사회 일깨우는 달존(達尊)되시기를!】〈졸시, “그대에게 드리는 소망”전문〉 (풍자문학, 2006년 여름호)
※달존(達尊); 세상사람 모두가 존경할 만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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