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대구일보] 데칼코마니-아버지 / 김원식

시인답게 2016. 1. 7. 12:04

[대구일보] 데칼코마니-아버지 / 김원식 문학의전당 읽기

2015.11.27. 10:42

복사 http://blog.naver.com/mhjd2003/220551609543

전용뷰어 보기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데칼코마니-아버지 / 김원식



아버지는 칭찬도 화를 내며 하셨다/ 전교 우등상을 받던 날/ 궐련을 물며 아버지는 혀를 차셨다/ “노름판에 논밭뙈기 싹 날려 불고/ 저것을 어찌 갤켜, 먼 조화여 시방”/ 눈보라에 빈 장독 홀로 울던 새벽/ 몰래 생솔가지로 군불을 떼주시며/ 한숨이 구만구천 두이던 아버지는/ 자식 사랑도 당신 타박으로 하셨다/ 사립문 옆 헛청에 나뭇짐을 부리며/ 시침 떼듯 진달래를 건네주던 당신께/ 나의 숨김은 하나만은 아닌 듯하다/ 구들장 틈으로 새는 연기를 참으며/ 자는 척, 당신의 눈물을 본 것이요/ 꼭 탁한 아비가 된 나를 본 것이다/ 아직 서슬 퍼런 지청구는 여전한데/ 여태 당신 속정까지는 닮지 못했다

- 시집 『그리운 지청구』(문학의전당, 2015)
..........................................................................................................

우리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게 사랑인지 모를 때가 있다.
특히 오랫동안 가까운 곳에서 지속된 사랑 앞에선 더욱 그렇다.
누군가 잠깐 베풀어준 한 두 번의 사랑에는 감사하면서도, 정작 묵은지 같은 속 깊은 사랑에는 아예 눈치 채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당연시한다.
감사를 잊고 살고 심지어 그 사랑이 불편하기조차 하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렇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투박한 아버지의 사랑은 훗날에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서야 ‘그때 왜 그러셨는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된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니까.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니까.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 주니까.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한 백일장에서 초등 2학년 아이가 쓴 ‘아빠는 왜’란 제목의 알려진 글이다.
요즘 아버지의 위상이 이토록 왜소해진 까닭은 아버지의 ‘지청구’가 사라진 탓이 아닐까. 싫든 좋든, 자식 사랑도 당신 타박으로 하셨거나 아니거나 그때의 아버지는 든든한 울타리고 버팀목이었다.
아버지라는 버팀목에 기대지 못한 아이들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가 없다. 

프로이드도 ‘내가 어린 시절 가장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보호막이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가정에서 아버지의 위치는 중요하다.
어머니의 사랑이 향기로운 꽃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는 거목과도 같다. 
표현하진 않지만 아버지의 깊은 사랑은 자식에게 이 세상 무엇보다 살아가는데 힘이 된다. 
아버지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사회적 지위나 성공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이룬 것 하나 없는 초라한 아버지도 그의 자녀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의 성취가 아니라 자식들에겐 당신이 남긴 한마디 ‘지청구’와 같은 추억으로도 평가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투박하지만 속 깊은, 그래서 원망할 수없는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된 ‘지청구’를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오늘은 내게도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97회 생신일이다.
떠나신지 26년이 흘렀는데도 기억 속에 또렷한 몇 소절의 함경도 사투리. 걸핏하면 ‘머저리 같은’ 이라며 타박하곤 했던. 당신은 그 자식이 성에 차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저린 다리 마지못해 주물 때 코를 구기며 맡아야했던 발 고린내. 지독하게 혐오했던 살 냄새 하나 온전히 물려주신 아버지. 하지만 속정까지 닮으려면 아직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