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지청구'

이령 시인을 읽는다. - 삼국유사 대서사시 - 사랑편

시인답게 2020. 6. 16. 11:24

이령시인을 읽는다삼국유사 대서사시 - 사랑편

 

천 년 전 사랑의 온도와 이별의 습도를 체감한다.

이제, 연애시의 기준을 이령 이전과 이후로 구분 해야겠다.

이별은 사랑 이전에 시작된다.'

이 한 문장이 절창의 서곡이었다.

눈물나이의 가슴팍을 관통하는 화살촉 같다.

잠시 시집을 덮는다.

다음 장을 담기에는 아직, 내가 마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등 뒤에 꽃을 두는 일은 서사적이다

밤보다 깊은 새벽을 밝히는 현재의 일이다

가고 올 시간의 흔적을 보듬는 일

이별의 비수와 비가를 숨기기엔 이 계절이 너무 짧다

너를 품어 꽃을 피웠지만 자리마다 물컹하다

모든 서사는 지금, 바로 지금 서정적으로 완성된다

(중략)

너를 건너왔으니 나를 데려와야지

- 백률사에서 5 일부.

 

나를 데려와서 완성할 서사는 어떤 서정으로 이별을 완성할까?

이차돈의 하얀 피의 순교는 지추사 대나무 꽃으로 완성되었을까?

 

누구도 숨길 수 없는 표정을 우리는 지금이라 부르지만

또 더러는 감춰야만 하는 손길이 꽃이 되는 내일.

무엇이 저리도 깊어 표정이 소리가 되는 걸까

 

내 손을 떠난 어제, 오늘은 내일의 씨앗

 

바람이 불면 바람을 업고

천둥이 치면 천둥을 이고

 

흔들릴 때 흔들릴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한 생을 다 건너도 꽃이 될 리 없다

- 멸망의 조짐 5. 일부.

 

독일 철학자 셸링은 저서 '선험적 관념의 체계'에서 자아의 본질이 자각에 있으며,

자각의 최고 경지가 예술임을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삼국유사 대서사시

사랑편의 이령 시집은 단언컨대 선험적 통각으로 천착, 천년역사 속 사랑을

오늘의 예술로 승화시킨 문예부흥 대서사시다.

이령 시인을 밑줄 그으며, 지금은 시의 심장소리를 읽는다.

 

필자는 계림 금궤에서 태어난 김알지 67세손 경주김씨 계림군파로,

김알지 손의 첫 왕인 미추 왕이나 실제 경주김씨의 시조인 경순왕의

손으로만 여태껏 살아왔다.

시라는 문학이, 시인이라는 혁명가가, 역사와 예술의 7차 산업을

저리 광속도로 부리고 있는데, 나는? 이라는 의문부호 앞에서,

이령 시인의 공부 앞에서 부족한 나를 통렬히 반성한다.

시집을 상재하면서 앓았을 천년의 사랑과 이별 앞에 혹은 왕좌를 위해

비련의 피로 계림의 뿌리를 적시고 있는 내 혈통에게 속량의 마음을 갖는다.

 

이령 시인은 삼국유사 대서사시 - 사랑편 시집을 상재하면서

천 년 전의 미래인 현실 사랑법이나, 삼국유사 속 사랑길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 사랑 이전에 시작된 이별을 껴안았으리라.

이승하 시인은 졸 시집 사각바퀴 추천글에서 '눈물나이' 를 정의한바 있다.

이령 시인에게 그렁한 눈물나이는 사시지마라 일렀더니

이미 가을쯤 닿아 있을 거라는 답변이 왔다.

어찌 천년사랑의 서사를 등 뒤에 두고 사는 시인이 그렁하지 않겠는가?

 

그가 부리는 고답적인 시어들,

천년고도에 살면서 땀걸음으로 품앗이한 시의 종자인,

신라의 역사를 해감시켜 쓴 사랑의 미학과 결별의 미소가 심장을 타종한다.

껴묻거리, 돋을 될 때, 덧널, 아귀차다, 치미, 벼름벼름.

처럼이란 말처럼 쓸쓸한 시간

다소 생경한 시어에서 우러난 맛과,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문장들이,

거침없이 삼국유사 속 사랑을 학습하게 만든다.

 

그림자가 그림을 완성하듯, 올 것이라는 오고야 말 것이라는 그 믿음으로 봄은 온다.’

-화랑을 만나다. 4. 일부

내 딛는 걸음마다 감기는 향기로운 말씀, 봄보다 먼저 타오르는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

-남산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4. 일부

 

나는 어쩌면, 이령 시인을 표절의 타겟으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스민다.

 

이제 이별의 습기를 고슬하게 말리고, 산문에서 삼가 재독을 시작한다.

사랑, 그 아름다운 이별이 사랑 이전에 시작된 깨달음을 얻어야겠다.

이 시집을 읽지 않아도 여전히 그대는 사랑을 갈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은 그대는 분명,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구할 것이다.

그대들의 사랑도 여여하시라.

 

- 200615 김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