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스크랩] 어머니의 장독대, 그 안에 담긴 마음 하나

시인답게 2006. 4. 10. 10:30

 

 

 

 

 

 

어머니의 장독, 그 안에 담긴 마음 하나


장독은 김장이나 장을 담아두는 옹기에 불과하다. 또한, 장독을 놓기 위해서 집안 한 편에 돌로 쌓아 놓은 평평한 장독대는 장독들을 모아두는 장소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크게 잘못된 사고다. 우리의 장독과 장독대는 단순히 김치나 장을 담아 놓거나, 장독을 모아 놓는 장소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장독과 장독대에는 숱한 정과 어머니의 마음과 그리움이 담겨져 있다.


흔히 우리는 장독을 옹기(甕器)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옹기라고 할 때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을 한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빚어 초벌구이를 한 그릇이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오짓물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이다. 근대이후 윤기가 없고 겉이 매끄럽지 못한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옹기는 주로 윤기가 있고 단단한 오지그릇을 지칭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 그릇인 옹기 중 질그릇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든 후 잿물을 바르지 않은 채 6백~7백 도로 구워낸 것이다. 이에 비해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오지 잿물을 발라 1천2백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겉이 반지르르하게 윤이 나는 그릇이다. 우리가 흔히 김장독과 장독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옹기는 값이 싸고 튼튼해 생활 구석구석에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옹기를 잘 살펴보면 우리네 조상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옹기를 활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간장, 된장, 김치, 물 등을 담는 커다란 독이나 시루는 물론 굴뚝, 초병, 등잔, 기와, 소줏고리, 주전자, 장군 등 옹기 생활용품으로 쓰여 왔다.

 

이와 같은 옹기의 또 다른 장점은 금이 가거나 깨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라는 점이다. 옹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우리 생활 속에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긴 세월 동안 일반 서민들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우리의 식생활과 생업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끈질기게 살아남아 왔던 민초들과 가장 가깝게 있었던 실용도구라는 점이다. 삼국시대 이후 그릇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토기는 점차 단단하고 가벼운 도기로 만들어졌다.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와 같은 새로운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친근한 벗으로 자리한 것은 옹기였다.


문헌상 옹기에 대한 기록은 1834년 간행된 서유구의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옹(甕)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토기 그릇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주로 곡주와 장류를 담아 두기 위해 사용된 단지의 한 종류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위지동이전(魏誌東夷傳)』 등과 같은 그 이전의 문헌에서도 옹기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장류나 술, 곡식 등의 중요한 저장고로 이미 옹기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옹기의 정확한 발생 시기는 알 수 없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때는 와기전(瓦器典)이라 하여 옹기를 굽는 직제까지 두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도 서울과 지방에 100여 명의 옹기장을 두었다고 한다. 요즈음 들어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고 생활이 나아지면서 자연과 인체 등 삶의 질을 높이고자 우리의 옛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옹기로 만들어진 장독이나 장독대는 단순히 김장을 담구고, 장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우리 어머니들에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정월 보름이 되면 그 장독대 앞에 작은 상을 정갈하게 준비하고 그 위에는 정화수와 촛불을 켜고 집안의 안과태평을 기원했다. 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나면, 돌아오는 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비손을 한다.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미역국을 끓여 장독대 앞에 산신상(産神床)을 마련하고 정성껏 빌었다. 가을이 되어 추수를 하고나면 장독대 곁에 있는 터주가리의 곡식을 꺼내 ‘가을떡’을 해서 올려놓고, 지성으로 추수의 감사함과 더불어 새해의 농사가 잘 되기를 빌었으며, 그 떡은 집집마다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풍속을 만들기도 했다.


시집살이가 고될 때 남몰래 찾아가서 친정을 생각하며 소리 없이 울면서 빌던 것도 장독대요, 집안에 경사라도 날 양이면 가장 먼저 달려가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곳도 장독대였다. 이러한 장독대를 잃은 것은 바로 어머니의 마음을 잃은 것이다. 모두가 아파트를 선호하고 서구화된 가옥을 선호하면서 우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더구나 집안에 있는 옹기는 화초를 담거나 장식용으로 사용을 하기도 했다. 숨을 쉬는 옹기는 물을 넣어두어도 오래 간다. 음식을 해 놓아도 쉽게 상하지를 않는다. 그러니 화초를 키우기에도 적격이다. 그만큼 자연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것을 화초 용기로, 또는 집안에 장식품으로 사용을 할 때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마음도 장식용이 되어버렸음을.. 그래서 더욱 슬퍼진 어머니들이 마음을 잃고 난 후 살기가 힘들어졌음을.. 모든 것을 플라스틱 용기로 대체하면서 장을 담구는 일도, 온 마을이 모여 김장을 담구는 일도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더욱 할 일이 없어지고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날마다 물걸레로 반들거리게 닦아대며 자식들의 안녕을 빌고 집안의 태평을 빌던 그 장독을 어머니에게로 돌려드려야 할 때다. 그것이 또한 자연과 닮은 우리 옹기를 사용하여 우리를 자연친화적인 사람으로 바꾸는 길이요, 건강을 찾는 길이기 때문이다. 

출처 : 전통을 찾아서~
글쓴이 : 다시래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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