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스크랩] “도둑 같이 기어와 봄을 뭉개버린 국가여”

시인답게 2006. 4. 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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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 . . .

 


                                                                                <글/ 가수 정태춘  사진/ 나눔>

 

 

 

 

2006년 4월 어느날이었다


국가는,
도두리 들판으로 들어가는 봄 물을 막기 위해
용수로에
속성 건조 세멘트를 쏟아
부었다

국가는, 그 물도랑
겨울 쓰레기며, 지푸라기들을 치우려는
도두리, 대추리 농민들을
5천여 전투경찰로 밀어부치고
그 용수로 둑을 아예
포그레인으로 뭉개
버렸다

 

 

 

 

 

 

 

국가는 그날 새벽,
800여, 20대 초반의 철부지 용역들을 선두에 세우고
그 들녘으로 도둑처럼
기어 들어왔다

 

 

 

 

 

국가는 그날,
해는 떴으되 황사 가득한 들녁에서
올, 초 봄
농민들이 보리 씨앗 뿌린
마을 앞 들판을
불도져로
뒤집어 버렸다

 

 

 

 

늙은 농부들은 눈물을 흘렸고,
용역들은 그들의 얼굴에
소화기를 쏘아대고

 

 

 

 

 

 

그날 국가는,
거기서
31명의 인간을
체포해 갔다

 

 

 


그들은 들판에서
개처럼 끌려나와
어디론가로 따로 따로
압송되었다

 

 

 

 

 


침착한 미군과 양순한 카투사들이
황새울 철조망 너머
대한민국 영토 밖에서 망원경으로
그걸 다
지켜보고 있었고
그들의 K-6 캠프 험프리스 기지 안에서
일과 종료 나팔소리가 들릴 즈음
국가는
그 들판에서
병력과 장비들을 철수하기
시작했다

 

 

 

 

 


아, 들판에
봄 바람도 따사로운
어느 봄날이었다

평택 서해안 인근의 황금 들녁은
그날도 슬픈 노을
목 마르게 삼키고
제 몸 깊은 상처 달빛에 드러낸 채
밤새도록
통곡할 수 밖에
없었다

 

 


2천 6년 새 봄,
도두리 대추리 마을 텃밭에
마늘 싹들이 새파랗게
샛파랗게 올라오는
어느
봄날이었다

 

 

 

 

2006.4.10 / 도두리 가수 정태춘

 

2006/03/15/평택/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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