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스크랩] 차나 한 잔 하시게

시인답게 2006. 4. 10. 20:11


[설악산 백담사 산방다원]

산사의 작은 산방다원에 앉아
녹차 한 잔 시켜 놓고
창 밖으로 고요한 풍경을 지켜보면서
오직 차향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며
근심 걱정을 다 놓아버린 경험이 있는가.

빨리 차를 몰아
다음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거나,
이번 여행에서 더 많은 구경을 해야 한다거나,
잠시 쉬었다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사진 몇 컷 찍고 빨리 가야겠다거나,
이렇게 쉬더라도 몇 일 뒤면 다시 휴가가 끝나고
정신이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라거나,

그런 무거운 마음의 짐을 다 놓아버리고
그저 아주 평화로운 마음으로
다른 목적지를 생각지도 말고,
또 내일이나 몇 일 뒤에 있을 근심 걱정의 굴레에서도 호젓하게 벗어나서
그냥 편안한 차 한 잔.

그런 여유...
그런 휴식...

사실 우리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시간인지 모른다.

그런 시간은 쓸모없어 보이고,
생산성 없어 보이고,
자꾸 그러다가는 남들보다 뒤쳐질 것 같고,
그 시간에 무언가를 하는 게 낳다고 여길 지 모르겠지만
정작 우리의 삶을 윤기있게 해 주고
우리 안에 정신을 올곧게 세워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시간 안에서 나온다.

그저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무언가를 도모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냥 편안한 시간.

편안히 조용한 숲 속의 산사에 앉아
온갖 시름과 시간과 계획과 생각들을 다 놓아버리고
그냥 차 한 잔 즐길 수 있는 시간.

산사를 찾아 갈 때는
도시에서의 마음의 짐들은 다 놓아버리고
촉박한 시간에 쫒기지도 말고
다 놓아버리고, 다 재껴버리고, 다 비우고서
맘 편히 다녀오시라.

다녀오기 어렵거든
이 사진 한 장 벗하면서
바로 지금 이 곳을 산방다실로 만들 수도 있다.

바쁜 회사 일과 중 잠시 쉬는 시간에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온갖 짐들을 비우고
편안하게 다만 차 한 잔에 집중할 수도 있는 법.

그랬을 때
조용한 산사의 노스님이
말 걸어 올 것이다.

'차나 한 잔 하고 가시게'
출처 : 물소리 바람소리(www.moktaksori.org)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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