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뜰 마을 / 김원식
모든 스러져 가는 것들은 분명 절정일 때가 있었을 것이다 무갑산 홀딱새 울음소리에 부시시 일어난 섬 뜰* 강물들이 자작나무숲을 걸어 나오는 햇살을 마중한다 그때쯤 아내와 함께 남한강 푸른 백로 소리로 귀를 씻으며 꽃의 고요 속을 산책한다 초롱꽃 종소리 은은한 날 산안개 머리를 감는 강가에서 바람의 장단을 치는 각시붓꽃을 만난다 한사코 새색시의 기별을** 안고 와 베란다에 옮겨 심는 성스런 의식을 아침나절의 호사스런 사치로 즐긴다 순간, 오롯하던 꽃대들 제 몸을 꺾고 잎사귀들 맥이 싹 풀린다 알 것 같다. 무더기로 피어있던 그 이유 강바람에 서로를 꼭 부둥켜안고 꽃이 질 때까지 서로의 어깨가 되어 주었음을 다시 붓꽃이 악수를 청할 때 쯤 대저, 사람도 꽃들의 시가 되어 섬 뜰에 절정의 향기로 흘렀으면 좋겠다
* 섬 뜰: 광주 도평리(島坪里). 곤지암천이 감싸고 흐르는 마을. * * 기별 : 각시붓꽃의 꽃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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