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고추 꽃길에서 무너지다

시인답게 2007. 1. 19. 12:00

 

    고추 꽃길에서 무너지다

 

 

갈 곳 없는 봄 날

수런거리는 앞산에 들었습니다

농을 치는 조팝꽃 난장에

온통 넋이 팔려 있을 때

전화가 온 건 그때였습니다

‘고추 꽃잎은 몇 장이야?’

참 뜬금없는 살가운 치정입니다

건들건들 태연한척 살아온 날들.

비련의 종소리 아직도 깊은데

습벽처럼 마음이 무너지는 오늘.

그립지 않을 만큼 간격을 두고

은밀한 기억 속을 따라 걷습니다

가까이 있어 멀리 두어야 할 사람.

내 그리워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그 수척한 그리움, 잊고 살아도

고추 꽃잎 수줍게 웃고 있는 날

시침 떼듯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05년 5월 초고/07.1.19일 白愛 김원식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 바다에서   (0) 2007.08.17
풍경 2 ( 모란장 대폿집)  (0) 2007.07.01
별루, 다시 선운사에서  (0) 2006.11.02
이별, 다시 선운사에서  (0) 2006.10.31
잡목雜木  (0) 2006.08.03